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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진실- 한일문(경남과기대 산학협력 교수)

  • 기사입력 : 2018-1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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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11월이다. 동네 뒤 비음산 아래쪽까지 단풍의 향연이 들리는 듯하다. 이렇듯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글 중에 ‘떨어지는 순간에 깊게 든 사랑의 내음이 그에게는 꽃이었으리라’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나무는 뿌리가 흡수하는 유기물과 잎 속에 있는 엽록소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탄수화물을 만들어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중요한 엽록소도 가을이 되면서 일조량이 적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존재를 잃어가게 되고 급기야 남아있는 성분마저 햇빛에 분해되면서 사라지는데 이때를 기회라고 느낀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안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형형색색으로 변화시키는데 이것을 단풍이라고 한다.

    무릇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현상들이 많지만 단풍만큼 아름다운 색깔을 선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움이 나무에게는 뼈를 깎는 아픔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저 우리는 보이는 단풍만을 즐기고 있다. 양분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봄과 여름, 하루도 쉬지 않고 양분을 모으고 싱그러움을 보여주던 소중한 잎을 떨어뜨리는 처절하고 아픈 사실을 모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떨어지는 자신을 추하게 보이지 않고 끝까지 고상함과 품위를 잃지 않는 위대함을 모르고 있다.

    인생의 후반에 접어든 나는 이런 자연의 섭리 속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젊은 시절 마치 푸른 잎 속의 엽록소가 양분을 만들 듯 열정을 바친 대가로 가족들이 살았고, 이제는 아이들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새 노년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나 자신을 서서히 소모시켜 가고 있다.

    꽤나 된 기사에서 젊은이들 가운데서 경로(敬老)가 아닌 혐로(嫌老)라는 말이 오간다는 글을 읽었다. 물론 극히 일부이겠지만 혐로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몹시 서글프게 한다. 비록 지금은 단풍이 되어 떨어지지만 한때는 꽂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 푸르던 잎이었다는 사실을 추억하면서, 어르신들의 작은 목소리도 귀 기울여 들었으면 한다.

    한일문 (경남과기대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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