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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헛헛하다- 이성모(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8-10-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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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반포 572돌 한글날, 우리 경남은 그야말로 국가공휴일을 기념하여 쉬는 날이었다.

    이웃한 부산광역시는 시민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식을 개최하는 한편, 부산지역 한글 발전을 기리고 다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인천광역시 역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었다. 그나마 경남에서는 도보조금 지원으로 한글학회 경남지회와 마산외솔회가 기념식과 특강, 아울러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제42회 국어순화경시대회를 개최하여 초, 중학교 26개교 257명이 우리 말글에 대한 실력을 겨루었다.

    기념식과 더불어 다채로운 행사를 치렀다고 해서 한글날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말글을 지키고 살려나간 이들을 추념하고 앞으로도 우리말글을 더욱더 잘 부려 갈무리해야 한다는 다짐이야말로 국가기념일로서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시대에 우리말글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싸우던 시절이 있었다. 민족자결주의의 일념으로 대동단결한 3·1기미독립만세 이후, 1921년 12월 3일, 현재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로 개명, 1908년 국어연구학회가 최초의 학회)가 결성되었다. 생각해보라, 1942년 가을에 벌어진 조선어학회 사건의 발단이 함흥영생고등여학교의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우리말로 대화한 것을 꼬투리로 잡아 시작되었다는 것. 이를 빌미로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우리말글을 말살하려 들었으며, 숱한 한글학자들이 대거 검거될 때 적용된 죄목이 치안유지법의 내란죄이었다. 민족말살, 한국어 말살, 이때 말살이란 ‘있는 사물을 뭉개어 아주 없애 버림’을 뜻한다. 우리 민족을 뭉개어 아주 없애 버리려 했던 일제였다.

    나라 없는 시대임에도 꿋꿋하게 지켜내고 살려낸 한글이다. 그러나 오늘날 모질고 독한 일본제국주의 못지않게, 제 스스로 민족 신문이라고 일컫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의 짓거리를 볼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말글을 되살려 밝혀 적지는 못할망정, 낯선 외래어와 외국어를 바탕으로 정체불명의 신조어를 마구 쏟아낼 뿐 아니라, 그것이 마치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앞장서서 이끄는 것인 양 우쭐대는 모습을 볼라치면 참으로 아뜩하다.

    언론 매체에 지식인이랍시고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말 씀씀이도 외국어 일색이다. 유식하고 잘난 척하기에 딱 좋은 언어가 외국어이다. 게다가 대중들에게 여과없이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출연하는 사람들 역시 우리말을 버린 지 오래인 듯, 온갖 조어로 우리말글을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 우리말을 비아냥거리는 말놀이를 일삼고 있다.

    이들에게 물어본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한글은 민족자존의 얼굴이다. 우리 민족을 우리끼리 이어주고, 우리 산하에 사는 숱한 물물마다 우리글의 이름을 붙여 낙락하게 살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주시경은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기음문자의 하나”라고 하였다. 한글을 두고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공기 진동에 불과한 소리를 문자로 바꾼 것도 놀라울 뿐 아니라 현대 언어학의 ‘음소’ 그 변별적 자질에 도달한 것 역시 몇 세기를 앞서가는 탁월함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우리말글은 우리가 다음 세대들에게 소중하게 물려주어야 할 민족혼이며 얼이다.

    논어의 ‘요왈’편, 그야말로 공자의 마지막 말씀.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다음과 같이 빗댄다. “한글을 모르면 대한민국 사람을 알 수 없다.”

    나라 잃은 시대, 그리고 가슴 벅차게 우리말글을 되찾은 때를 떠올려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굳건하고, 따라서 한글을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할 역사적 사명 역시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 너무도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글사랑, 나라사랑!

    이성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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