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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 고영조

  • 기사입력 : 2018-10-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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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가설공 김씨는 공중에 떠있다. 그는 허공을 밟고 활쏘는 헤라클레스처럼 남쪽하늘을 팽팽히 잡아당긴다. 당길 때마다 봄 하늘이 조금씩 다가왔다. 공중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 들린다. 사랑해요. 화살처럼 달려가는 중이다. 붉은 자켓을 펄럭이며 그는 지금 길을 닦는 중이다. 하늘을 가로질러 푸른 다리를 놓는 중이다. 제비들이 어깨를 밟을 듯 지저귄다. 그는 허공과 허공 사이에 케이블을 걸고 벚나무 가지가 붉어질 때까지 죽은 기억들을 끌어당긴다. 허공을 밟을 때마다 목조계단이 바스라지며 가슴을 찌른다. 모든 언덕이 팽팽해진다. 살아오는 중이다. 말과 말 사이에 물길이 트이는 중이다. 중심이다. 닿을 수 없는 마음들이 물길에 실려 가는 것이 보인다. 그는 지금 허공을 밟으며 그대에게로 가는 푸른 다리를 놓는 중이다.

    ☞ 스마트폰 세대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겠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유선전화기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마술처럼 신기한 기계였다. 지금은 그것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신세계에 살고 있지만, 혼밥 혼술 히키코모리 사이버폐인 고독사 같은 신조어들이 속속 생겨나는 것을 보면 기계문명의 발달과 사람의 고독(불행)지수는 비례한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몇몇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올해는 ‘노벨문학상’을 취소한다는 한림원 뉴스를 접하면서, 인류의 진정한 안녕을 위한다면 애꿎은 ‘문학상’을 취소할 것이 아니라 ‘화학상’ 같은 것을 폐지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전화가설공이 전화케이블을 설치하는 광경을 허공에 다리를 놓는다고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 시는 ‘헤라클레스’ ‘남쪽’ ‘봄’ ‘사랑’ ‘화살’ ‘푸른’ ‘붉은’ ‘제비’ ‘물길’ 같은 관념들이 뿜어내는 상승 기운과 속도감과 미감으로 잘 버무려진 ‘푸른 다리’를 탄생시켜 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시에서 현저하게 이질적인 이미지인 ‘허공을 밟을 때마다 목조계단이 바스라지며 가슴을 찌른다’ 구절은 ‘푸른 다리(기계문명)’가 몰고 올 폐해를 알리는 경고깃발을 ‘푸른 다리’ 한복판에 꽂아놓은 듯, 이 작자의 시력이 ‘푸른 다리’ 너머에까지 닿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만약에 이 구절이 없다면 ‘푸른 다리’는 불통에서 소통으로, 느림에서 빠름으로, ‘죽은 기억들을 끌어당기는(재생하는)’ 말 그대로 허공에 놓인 ‘푸른 다리’에 머물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계문명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일반화된 관념들을 궁굴려서 신선하고도 세련미 넘치는 서정시를 뽑아낸 이 작자의 시력이 넓고도 깊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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