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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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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서도 신규 간호사 괴롭힘 ‘태움’ 있었다

도내 대형병원 등서 증언 잇따라
실태조사 결과 40.9% “피해 경험”
가해자 30% 직속상관·사수 집계

  • 기사입력 : 2018-02-2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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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선생님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고 배가 아팠다.”

    경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A(31·여)씨는 부산과 한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기억을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신규 간호사였던 A씨는 출근하면서 선배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간호복으로 갈아입은 뒤에는 다시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그 선배는 다른 간호사들에게 “신규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며 질책했다. A씨는 크게 당혹스러웠지만, 이는 A씨가 겪게 될 ‘태움’의 시작에 불과했다. 태움은 간호계의 은어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교육하며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괴롭힌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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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픽사베이/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대형 종합병원(300병상 이상)에선 보통 프리셉터(사수)와 2인 1조로 환자를 돌본다. A씨의 사수는 당일 근무스케줄에 따라 달랐는데, 특히 엄했던 6년차·10년차 선배 간호사는 작은 실수에도 “어제 가르쳐줬는데 왜 모르느냐. 머리에 똥만 찼느냐” 하며 호되게 나무랐다. 교육하는 과정에선 볼펜이나 손가락으로 머리나 이마를 툭툭 찌르거나 의료용품을 담은 드레싱카트로 밀치기도 했다. A씨는 간호사의 실수는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탓에 업무와 관련한 ‘태움’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출근 복장과 화장 등 외모에 대한 지적에 이르러서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A씨는 엄한 선배와 일하는 날이면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런 선배를 마주치면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복통이 생겼다. 결국 A씨는 스트레스성 십이지장염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그만두게 됐다.

    3년 가까이 도내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했던 B(29·여)씨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을 프리셉터를 따라다니며 배우고 곧바로 혼자 20명의 환자를 맡은 B씨는 “내 일도 바빠 정신없는 와중에 어떤 선배는 ‘너는 왜 네 일만 하냐. 내 일은 안 도와주냐’고 나를 태웠다”고 말했다. B씨는 견디다 못해 그 병원을 그만뒀다.

    지난 15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젊은 여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병원 내 ‘태움’ 문화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약 한 달간 간호사 7275명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실태조사’ 1차 분석 결과, 간호사의 40.9%는 ‘지난 1년간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괴롭힘 유형은 고함과 폭언(1866건), 험담(1399건), 굴욕 및 비웃음(1324건) 순으로 집계됐다.

    전문가와 간호사들은 ’태움’ 문화의 원인으로 간호사 인력부족에 따른 과중한 업무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은다. 중·대형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20명이 넘는 환자를 담당하는 상태에서 선배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의 교육까지 책임지다 보면 업무량은 2배로 늘어난다. 업무 스트레스를 엉뚱한 방향으로 발산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1~2달 정도 짧은 교육기간 등도 태움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김세영 창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프리셉터가 나쁜 사람이거나 자주 지적받는 신규 간호사가 바보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상황을 몰고가는 병원과 조직, 의료법이 문제다”며 “의료법상 환자 대비 간호사 수가 5:2가 돼야 되는데,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이를 지키지 않는 병원이 30~40%는 된다. 간호관리료 차등제 등 제도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법령 준수와 제도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정부가 관심을 갖고 간호사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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