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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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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충남 태안

노을 품은 가을 밤바다, 마음의 상처 다독여주다
바다 곳곳 갯지렁이·조개 숨구멍

  • 기사입력 : 2017-11-2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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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은 크게 편안하다는 뜻을 가진 작은 반도다. 작년 가을, 어려서부터 어울려 온 친구들과 태안반도에 밤바다를 보러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급하게 약속된 여행 일정이라 각자 할 일을 하고 만나 출발해 해질 무렵에야 태안에 도착했다. 우리의 숙소는 태안의 천리포 해변이었다. 천리포의 저녁바다는 부랴부랴 도착한 우리들처럼 가쁜 숨을 토하듯 파도가 들썩이고 있었다.

    가을에는 서해 대하가 제철이다. 숙소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태안의 명물 대하를 사왔다. 절반은 소금으로 굽고, 절반은 새우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해산물 향이 진하게 우러나온 라면 국물은 추위에 굳은 몸을 휘저었다. 뜨거운 면발을 후후, 말 더듬듯 불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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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천리포해안의 밤 풍경.



    라면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수산시장을 구경했다. 수산시장의 수조에는 생선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우리들은 상인들의 호객행위 속에 서비스를 많이 챙겨 주겠다는 어느 횟집으로 들어갔다. 변변한 집이 없어 한 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처럼, 수조 안을 빼곡히 메운 생선들이 횟감이 되어 나왔다. 횟감을 내어주시는 수산시장 아주머니의 손은 무척 투박하셨다. 두꺼운 껍질로 무장한 생물들을 캐느라 껍질보다 두꺼워진 손. 태안수산시장을 움직이는 많은 손길에서는 썰물에 아쉬워 않고, 밀물에 자만하지 않는 묵묵함이 느껴졌다. 내일 다시 물때가 올 것을 알기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에 익숙한 기운이었다.

    태안은 한때 기름유출사고로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사람의 손길로 무사히 극복해냈다. 유출사고 이후에도 태안은 변함없이 서해의 대표적 관광지로 손꼽힌다. 관광지는 우리 같은 여행객에게는 낙원이지만, 거주하는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태안 사람들은 태안의 관광 상품인 대하와 꽃게 같은 갑각류 같은 마음을 지녔다. 바닷바람과 풍파에 겉은 거칠고 딱딱하지만 속은 하얗고 여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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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포해안의 갯벌.



    해산물과 함께 적당히 술을 마시고, 모두들 방파제에 나란히 앉아 밤바다를 내려 보았다. 멀리 오징어잡이로 보이는 배가, 불 꺼진 해안선을 토막 내고 있었다. 방파제를 지나서 해안선을 마주하며 천리포 해안을 거닐었다. 우리가 만난 가을밤의 태안반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어두운 밤임에도 갈대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려 갈대숲을 잘 찾아낼 수 있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다’라며 갈대는 변덕의 상징으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갈대에 대한 오명이라고 생각한다. 갈대의 엽록소는 연두나 푸름이 없다. 갈대는 갈색으로 태어나 갈색으로 죽는다. 서해안 갈대는 외로운 마음에 군집을 이루지만, 한평생 바람에게만 씨를 내어준다. 갈대는 바람을 통해 싹 트고, 바람에 바스락거리다 부서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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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에 사는 키조개의 집.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서해 갯벌을 관찰하듯 놀며 하루를 보냈다. 갯벌은 언제나 진행 중이다. 갯벌에는 아기의 입속 만한 구멍이 수억 개 있다. 이 구멍들은 대개 갯지렁이들의 집인데 항상 조수로 인해 무너진다. 그래서 갯지렁이의 집은 매일 지우고 다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조개는 바다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조개껍질의 무수한 결은 나이테와 같다. 조개껍질의 느슨한 결은 여름철 생긴 것이고, 조밀한 결은 겨울을 말한다. 조개는 바다의 호흡까지 기록한다. 물이 가득 부풀어 오르는 들숨 때의 결은 굵직하고, 말라가는 날숨 때의 결은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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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느린 호흡으로 흐르고 있다. 서해 조개의 껍데기에는 서해의 굴곡이 전부 스며 있다. 바다의 호흡이 어려 있는 서해 해산물은 유독 짠내가 강하다. 들숨과 날숨 사이 눅눅한 갯벌을 햇볕이 그윽하게 익혀 준다. 끈끈하게 데워진 갯벌에는 게며, 조개며, 지렁이가 얼굴을 내밀고 세상구경을 한다. 그동안 잘 데워진 갯벌에서 온몸으로 소금기를 집어 삼키고 다시 아래로 들어간다. 그래서 서해 생물들은 바다와 햇살 사이 엉긴 앙금을 긁어주는 염부의 표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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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포해안 인근에 있는 모항항.



    지금 같은 겨울 문턱의 가을 서해에는 철새가 온다. 철새는 갯벌에 부리를 박고, 끼니를 찾아 진흙범벅이 될 때까지 휘저으며 밥을 먹는다. 먹이를 찾아 껄떡껄떡 삼키고 진흙은 다시 게워낸다. 이때 철새는 대륙을 이동하는 동안 처진 몸에 소금기를 채워 넣으며 계속 목숨을 잇는다. 이렇게 갯벌은 무수한 생명들이 서로를 채워주며, 수천 년 동안 생명들을 숨 쉬게 해온 캄캄한 질서가 만들어졌다. 바다와 육지를 주선하며 쉬지 않고 살아내는 물길. 내밀한 구석구석에서 무너지고 세워지며 갯벌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해가 저무는 바다는 느리고 아득하다. 동해 파도는 사람을 보내주는 일처럼 울컥울컥 부딪히고, 서해 파도는 잔잔하게 몰려와 사람을 기다려온 끝처럼 부서진다. 태안에서의 하루 동안 몸과 마음을 풍족히 채우고, 해질녘 우리는 짐을 챙겨 태안을 떠났다. 창가로 축축하게 잘 젖은 갯벌의 저녁놀이 쌀알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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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수산시장의 낙지.



    태안으로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잘 일구어가던 미래와 작별하고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인생이 한 번도 제철을 만나지 못하고 끝날까봐 불안했다. 태안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감정이 조금 헹궈졌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사람에게 벌어진 상처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다독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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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백
    △ 마산 출생·경남대 재학
    △ 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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