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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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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50년째 ‘몸빼’ 만들어 이웃에 기부… 서두연 할머니

“얻어 입고 얻어먹었으니 바느질로 보답해야지”
조부, 독립군자금 지원 ... 일가 피신
일본서 태어나 17살 미산으로 시집

  • 기사입력 : 2017-07-1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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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륵~.”

    좁다란 골목에 정겨운 재봉틀 소리가 흐른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주민센터에서 경남대학교 후문 방향으로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 사이로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도로와 마주한 서두연 할머니(89)집이 나온다. 내년이면 구순을 바라보지만 서두연 할머니는 무려 50년째 일하기 편한 바지(일명 몸빼바지) 등을 만들어 기부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한 해 만드는 바지 개수만 무려 1000장에 이른다. 마산지역 봉사활동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는 서 할머니의 집은 이런 착한 나눔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결성된 ‘마산합포할머니봉사대’ 회원들로 늘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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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연 마산합포할머니봉사대 전 회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자택에서 경로당 등에 전달할 장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김승권 기자/



    ◆일본에서 시작된 삶= 서두연 할머니는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님의 7녀 중의 5녀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해주면서 도망자 신세가 됐는데, 아들의 안전을 위해 한국보다 일본을 택하면서 시작된 삶이다. 규슈 하카타역 인근에서 태어난 서 할머니는 17살이 되던 해에 마산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중매결혼을 하다 보니 너무나 힘든 시집살이였다.

    “요즘 말하면 내가 다문화가정이었지. 신랑이 뭐하는 줄도 모르고, 말도 모르고, 시집도 몰랐지. 신랑도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래서 설움 받고 고생 많이 했지.”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시할머니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삼촌 등이 모두 한 방에서 이불 한 개로 덮고 살았다. 집안 일이 많다 보니 잠잘 시간이 없었고, 잠을 자더라도 부뚜막에 기대서 자투리 잠을 청하기가 일쑤였다. 가난한 시절이다 보니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다른 집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누구나 힘들었어. 다 걸뱅이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똑같이 못살았다. 내가 그런 시절을 살았어. 내가 없어봤고, 입을 옷도 없어봤지.”

    ◆재봉틀과의 인연= 1968년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 서두연 할머니는 마산시 농촌지도소(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회의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성실함과 적극성을 인정받으면서 생활개선회 마산시연합회장을 맡았고, 수원에서 재봉 교육을 받으면서 재봉틀과 인연을 맺었다. “제가 30대에 농촌지도소에서 수원으로 교육을 보내주더라고예. 재단하는 법과 재봉틀하는 법을 배웠어예. 그때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대결을 했는데, 1등을 했슴니더. 귀중한 세금으로 배운 기술이니까네 열심히 했지예.” 서 할머니는 복지시설에서도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알고, 배운 재봉기술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지역을 돌며 헌옷을 수거해 깨끗이 씻고 뜯어 새 옷감을 추가로 이용해 손수 재봉틀을 돌렸다. 그렇게 만든 옷을 사회복지시설이나 경로당, 요양병원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재봉기술로 나눔을 시작했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은 옷까지 사 입을 여력이 없었어예. 그리고 이왕 봉사할끼면 우리가 잘하는 거로, 남들이 잘 안하는 걸로 하자 싶어가 몸빼바지를 만들기 시작했지예. 입고 벗기 쉽고, 통풍 잘 되고, 활동하기도 편하고 어르신들 취향에 딱 맞게 골라드리니 그렇게 좋아할 수 없는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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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연 할머니가 만든 장바구니.



    ◆마산합포할머니봉사대= 서 할머니는 재봉틀 봉사뿐 아니라 밑반찬 봉사에서부터 중고품교환 판매장 운용 봉사활동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적십자회와 새마을부녀회 활동도 오래했다. 그러던 중 1995년 적십자사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뜻을 같이하는 할머니들과 함께 마산합포할머니봉사대를 만들었다.

    이 봉사단체는 서두연 할머니를 중심으로 재봉틀 봉사를 펼쳤다. 평균 연령이 70대인 봉사대는 최고령, 최장활동 어르신 봉사단이다. 서두연 할머니는 22년간 봉사대 회장직을 맡아오다 최근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서 할머니 집에서 회원들이 모여 바지를 만든다. 매년 1000개 이상을 만들어 기증하고 있다.

    바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버리기가 아까워 식탁보나 주머니지갑 등도 만들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사실 수입이 따로 없다 보니 모든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8남매를 둔 서 할머니가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아 천을 사거나 한복집에서 쓰고 남은 옷감, 얻어온 폐현수막을 옷감으로 쓴다. “돈이 부족하고, 고생하는 건 사실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 모자라면 넉넉한 사람이 보태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옷을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창원지대’가 보내주고, 자원봉사센터에서도 현수막 하나라도 더 걷어다주려고 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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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연(왼쪽) 마산합포할머니봉사대 회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자신의 집에서 이숙인 회원과 사회복지시설등에 전달 할 반바지를 만들고 있다./김승권 기자/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서두연 할머니를 포함해 마산합포할머니봉사대는 지역에서 각종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피해복구 봉사에도 동참한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내습 당시 침수피해를 입은 해안지역을 제일 먼저 찾아 국밥과 생수를 제공하며 수재민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도록 했고, 2005년 마산 시내버스 파업 때에는 10여일 동안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버스운전 자원봉사자와 관계 공무원들에게 커피 등을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산합포할머니봉사단 활동이 항상 즐겁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체력이 부족해 얼마 못 버티거나 치매로 병원에 입원하는 할머니도 없지 않았다. 회원 간에 마음이 상하는 일 역시 더러 있었지만 서 할머니의 리더십이 회원들을 이끌었다. “아마도 서두연 할머니 아니면 봉사대가 지금처럼 유지되기 힘들었을 껄요”. 곁에 있던 이숙인(74) 할머니의 말이다.


    오랜 봉사활동으로 코오롱그룹 우정선행상을 비롯해 경남도자원봉사상 대상 등 각종 봉사상을 수상한 서 할머니는 기억력이나 시력 등 재봉질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7살 때 다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게 아쉬울 뿐이다. “내 하나가 열심히 해 갔고 남을 줬는데, 너무나 좋아하던 게 잊혀지질 않더라고. 나도 얻어먹었는데 보답해야겠다 생각했지. 봉사는 그런기다. 내 잘 묵고, 넘 해줄라고 하면 해줄 게 하나도 없다. 남한테 봉사하려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욕심부리면 절대 안 된다. 그건 봉사가 아인기라.”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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