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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미술교사 접고 산청으로 귀농한 25년차 농부 공영석씨

그리던 자연서 화가의 꿈 그리는 ‘붓 든 농부’

  • 기사입력 : 2017-06-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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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화가라 부른다. 그리고 화가라 하면 그림을 그리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직업화가를 부를 때가 많다.

    크지 않은 체구,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투박한 손. 그는 화가라기보다는 농부처럼 보인다. 그 역시 자신을 화가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촌부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족과 함께 산청군 오부면 양촌리 음촌마을에 그려놓은, 가로길이만 20여m에 이르는 대형벽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림이 좋아 화가를 꿈꾸던 그는 미술교사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도시인들은 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최적지라 생각하고 25년 전 오부면 일물마을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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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공영석씨.

    ◆귀농 당시엔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도= 30대에 갓 들어선 젊은이 공영석씨가 부산 등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지리산 산골로 혼자서 들어와 ‘여기서 살겠다’고 하자 주민들이 볼 때는 이상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제가 일물마을로 들어올 때는 귀농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모두들 도시로 떠나가던 때였어요. 그런 시기에 들어왔으니 이상해 보일 법하지요”라며 “당시에 사람이 떠난 촌집 한 채를 80만원에 구입해 부엌을 신식으로 고치자 그때 개량식 부엌을 처음 본 주민분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골에서 살겠다고 마음먹고 들어온 만큼 먹고살 길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쌀농사도, 찬거리를 위한 밭농사도 직접 지어야 했다.

    힘든 생활이지만 그래도 그림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지리산 자락, 깊은 산골짝에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낸 그는 부산에서 전시회도 몇 번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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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석씨가 산청군 오부면 양촌리 음촌마을 민안부 선생 비석 뒤편 벽에 대형벽화를 그리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예술인 가족= 전시회에서 공씨를 만난 아내 서원정씨는 자연 속에서 그림 작업을 하는 공씨에게 감명을 받아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후 큰아들인 공민성(21)씨가 태어났다.

    자연을 그리는 부모님을 보며 자란 아들 민성씨 역시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12살 되던 해에는 어릴 때부터 그려온 그림을 모아 그림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우연히 민성씨의 그림을 본 한 출판사가 후원은 물론 그림책 출간을 도운 것. 이후 경기도에서 원화 전시회도 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세 살 때부터 눈 뜨면 집 앞마당에 펼쳐지는 자연을 그림에 담아온 민성씨의 그림에는 자연이 주는 평화와 따스함, 생명에 대한 경외가 고스란히 담겼다.

    민성씨의 예술적 기질은 그림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수준급의 클래식 기타 실력을 뽐냈던 민성씨는 지난 2016년 콜텍문화재단이 주최한 ‘제7회 어쿠스틱기타 경연대회’에서 ‘밀양아리랑(편곡)’을 연주, 대상을 수상해 상금 500만원과 민성씨만을 위해 제작되는 최고급 커스텀기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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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씨가 작업한 창고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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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월에 걸쳐 완성한 민안부 선생 비석 뒤편 벽화.

    ◆우연히 만난 ‘벽화 그리기’= 1960년생으로 올해 57세인 공씨는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아내는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림으로 의기투합한 부부는 오래전부터 벽화 그리기에 도전해 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공재의 성격을 띠는 벽화의 특성상 기회가 쉽게 생기진 않았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가 살고 있는 오부면에 다소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던 창고를 벽화로 꾸미려는 시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화가가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벽화와는 화풍이 완전히 다른 탓에 어려움을 겪었던 그 화가는 공씨에게 상담을 해 왔고 공씨는 흔쾌히 벽화 그리기를 맡겠다고 했다.

    이 벽화 그리기를 계기로 지난해 오부면 음촌마을 민안부 선생 비석 뒤편 벽에 대형벽화도 그렸다. 가로길이 20여m, 높이 3m에 이르는 벽화를 그리는 데는 공씨와 그의 아내, 아들 민성씨까지 3명이 달라붙어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이 그림 덕분에 그동안 지나다니면서도 비석이 있는지도 몰랐던 마을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꼭 한 번 발길을 멈췄다 가는 장소가 됐다.

    민안부 선생 비석 대형벽화는 따스한 색감과 상세한 묘사, 의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구성 등 벽화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고루 갖췄다.

    그림 오른쪽에는 망경대를 표현하고 왼쪽에는 민안부 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대포서원을 그려 넣었다. 가운데는 산청을 대표하는 경호강 비경을 묘사했다.

    공씨는 벽화 그리기의 매력은 공동작업으로 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벽화의 캔버스가 되는 커다란 벽은 사실 그림을 그리기에 합당한 장소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표면이 거칠거나 굴곡이 져 있거나 심지어 균열이 생겨 갈라져 있는 곳도 많아요. 어떤 곳은 철근이나 철사가 튀어나와 있는 곳도 있고 이런 벽을 그림 그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작업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그림 그리기에 들어간다. 거의 3개월여를 가족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평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 속 깊은 대화도 자연스레 나누면서 덕분에 십수년 함께 살아 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까운 가족 사이가 됐다고 했다.

    이처럼 촌부의 모습으로 살며 가족과 함께 자연을 벗 삼는 공씨지만 젊은 시절의 꿈인 ‘그림’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눈앞에서 직접 보는 듯한 생생함이 담긴 정밀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씨는 “오부면은 제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늘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작은 재능이나마 고향을 위해 쓸 수 있게 돼 그저 감사하죠”라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고향 발전을 위해 도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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