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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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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021) 제18화 푸른 기와지붕 사람들 ⑪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

  • 기사입력 : 2017-02-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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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첩연봉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자욱하게 내리는 눈 때문에 사방이 잿빛으로 뿌옇게 흐렸다. 얼마나 올라온 것일까. 발목이 푹푹 파묻히는 산길을 걸어서 한 시간을 오르자 산 정상이었다. 이동성은 엎어지고 넘어지면서도 서경숙의 손을 잡아주었다. 낮은 산과 마을, 들판이 발아래 있었다. 산은 모든 것을 거느리고 있었다.

    “아름다워요.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서경숙은 설경을 보면서 탄성을 내뱉었다. 설경이 동양화 속의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내가 죽을 곳이오.”

    이동성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서경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죽으면 여기에 묻히고 싶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동성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산 정상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여기서 그렸다는 말이 있소.”

    이동성이 소나무로 걸어갔다. 곧게 자란 소나무에도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동성이 소나무 가지를 흔들자 눈이 우수수 떨어졌다.

    “김정희는 강원도에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서경숙은 웃음이 나왔다.

    “옛날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안다는 말이오? 이 나무는 금강송이오.”

    이동성이 소나무를 어루만졌다.

    “나무가 백 년은 된 것 같아요.”

    서경숙은 머리의 눈을 털었다.

    “경숙씨, 내 친구가 되어 주겠소?”

    문득 이동성이 정색을 했다.

    “어떤 친구요?”

    서경숙은 당혹스러웠다.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

    “전 못하겠어요.”

    “왜?”

    “내 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없어요.”

    “그럼 서로 조금만 털어놓기로 하지. 자기가 털어놓고 싶을 때….”

    “털어놓으라고 요구하기 없기예요.”

    서경숙이 이동성을 보고 웃음을 깨물었다. 이동성도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려갈까요? 어두워지면 길도 못 찾을 거예요.”

    서경숙이 이동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동성이 서경숙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서경숙은 이동성의 가슴에 안겼다.

    그가 그녀에게 입술을 가져왔다. 서경숙은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이 서경숙의 입술에 닿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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