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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세계를 트레킹하는 심은화 씨

나만의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 기사입력 : 2017-02-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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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진국일수록 사회구성원이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1996년)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졸업-취업-결혼-육아-노후라는 단 하나의 길에서 여전히 얽매어 있다. 이와 다른 삶의 궤적은 위험, 일탈, 무책임 또는 ‘청춘의 객기’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다. 개인이 원하는 가치와 별개로 관습화된 인생을 산 결과일까. 지난해 유엔(UN)이 세계 157개국 대상으로 조사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58위를 기록했다. 세계 10위권 경제수준 등을 고려하면 낮은 순위다.

    하지만 모두가 한정된 목표를 향해 달리는 레이스에서 잠시 멈추고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 자기 가치대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 친구 등 지인들의 평가와 눈총을 견뎌낼만큼 내면이 단단해야 가능하다. 결혼, 출산, 육아 등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절대적 가치를 거부한 채, 제 방식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함양에서 만났다. 결혼도 미룬 채 세계 여러 나라의 트레킹에 빠진 심은화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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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2일 뉴질랜드 북섬 푸케티 포레스트의 한 폭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심은화씨.

    ◆당당한 삶을 꿈꾸며= 올해로 37세인 심씨는 아직 미혼이다. 흔히 말하는 안정된 직업도 없고 거처도 일정치 않다. 그렇다고 심씨의 집안이 부유한 것도, 부모에게 의탁한 것도 아니다. 부모·친구·직장동료 등 주변에서는 이러한 심씨에 대해 걱정 또는 불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속된 말로 줄도 ‘빽’도 없는 그가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씨는 “트레킹이라는 도전. 그 길을 성취해가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라고 답했다.

    ◆뉴질랜드 3000㎞ 트레킹 도전= 심씨는 지난해 10월 뉴질랜드 북섬 끝에서 남섬 끝까지 횡단하는 테아라로아(Te Araroa) 3000㎞ 트레킹에 도전했다. 심씨 외에 이 코스에 도전한 국내 여성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

    전체 길이가 창원과 서울을 4~5번 왕복할 정도인 테아라로아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트레킹 코스처럼 길이 반듯하게 닦여 있지 않다. 산은 우거진 수풀로 등산로가 사라지기 일쑤고, 비가 오면 진흙뻘이 돼 발목까지 빠진다. 폭우로 산속에서 고립되는 일도 다반사다. 하루에 25㎞ 이상 되는 해변 코스를 걷다 보면 밀물이 들어와 해안가 절벽으로 쫓기기 바쁘다. 카누에 5일치 식량을 싣고 계곡을 헤쳐나가기도 해야 한다. 구간마다 최소 5~6일이 걸리는데, 매순간 이대로 계속 가야 하나, 다른 길로 우회해야 하나, 다시 뒤돌아가야 하나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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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12일 뉴질랜드 북섬 오마후타 포레스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심은화씨.

    ◆위험 극복하며 내공 키워=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심씨는 지난해 10월 말 전날 폭우로 수위가 가슴팍까지 높아진 강을 건너야 했다. 강을 건너 하루만 더 가면 마을이 나타나지만 뒤돌아가면 3일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하지만 남은 식량은 1일치, 심씨는 거센 물살을 무릅쓰고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별 탈은 없었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몇 시간 뒤 한 스페인 여성이 같은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렸고,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려 겨우 목숨을 건졌다.

    다음 달 19일 와카호로(Whakahoro)의 강에서 5일 동안 카누를 타야 하는 계곡 코스에서는 마침내 일이 터졌다. 이날도 비가 문제였다. 그는 급류에 휩쓸려 뒤집어진 카누를 붙잡고 1시간가량을 차가운 물속을 떠내려 갔다. 다행히 같은 코스를 가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계곡 어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추위를 견디며 긴급 구조대를 기다려야 했다.

    심씨는 “이제까지 트레킹을 하면서 많은 위험이 닥쳤다. 하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옅어졌고, 마음은 점점 단단해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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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집투성이가 된 심은화씨의 발.

    ◆“삶의 길은 여러 갈래였다”= 트레킹은 그에게 용기를 줌과 동시에 삶의 길이 하나뿐인 게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했다.

    심씨는 국제 트레킹 과정에서 네팔, 태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 20여개 국가를 여행하며 다양한 인생과 가치를 접했다. 그는 관광보다 현지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직접 방을 구하고, 토속 음식을 먹고, 그곳에서 일하며 현지인과 함께 지냈다. 거기서 만난 하루 한 끼에 만족하는 이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 우리가 보기에는 특별한 삶임에도 자신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모두 행복했다.

    그는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 길만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힘든 세상에 그래도 나는 좀 복 받았다고 생각할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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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4일 뉴질랜드 북섬 망가와이 절벽 길 부근에서 아침을 맞은 심은화씨.

    ◆한때는 박봉의 유치원 교사= 심씨도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았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결혼을 위해 여러 차례 선도 봤다. 하지만 당시 삶을 그는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20대 첫 직장은 창원의 한 사립유치원 교사였지만, 월급은 5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방세와 교통비로 대부분 쓰여 생활비는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평생 농촌에서 지낸 부모의 바람 때문이었다.

    ◆“마이너스의 삶이 싫었다”= 그는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으로도 마이너스만 쌓이는 이런 삶은, 스스로를 병들게 할 만큼 답답했다. 그때는 변화에 도전할 용기가 없었고, 주변의 눈총에 나약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도전이 두렵지 않다. 지난달 잠시 중단했던 테아라로아 트레킹을 올해 다시 도전한다. 북섬에서 실패한 카누 코스도 다시 시도한 후 남섬으로 갈 계획이다. 그의 버킷리스트에는 아직도 가보고 싶은 트레킹 코스가 빼곡하다.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사진=심은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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