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02일 (화)
전체메뉴

[살롱] 일상탐독 (25) 이문열/젊은 날의 초상

  • 기사입력 : 2016-08-04 14:25:37
  •   

  •  2001년 그해, 저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습니다.
     봄이면 벚꽃이 학교 안팎에 흐드러지고
     운동장 한가운데 서면 아름다운 만(灣)이 내려다보이는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풍광들은 저를 끝없이 꿈꾸게 만들었고, 동시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도록 만들었죠.
     그래서일까요.
     부끄럽지만 지금보다 그 시절에 훨씬 다양한 책들을 더 많이, 공들여, 열정적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앞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지만
     저는 학교 도서관에 퍽이나 자주 들락거리던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늘 당신이 쓴 책이 있었죠.

    메인이미지
     
     그래요. 그 무렵 당신의 글을 읽고 제 문장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찌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흔히 제 또래들은 문학 교과서에 실렸던 당신의 글에 감화되어
     당신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쓴 작가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당신의 무명시절에 종지부를 찍게 해 준 출세작 '사람의 아들'을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그 책은 제게 아주 익숙했거든요.
     아버지 서가 세 번째 줄 가장자리에 그 책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꽂혀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 까치발을 해야 겨우 책장에 손이 닿던 시절부터,
     시시때때로 그것이 내뿜는 알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에 사로잡히고는 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어렴풋이 알아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책이, 엄청난 내공을 가진 젊은 작가가 토해낸, 인간과 신, 존재와 구원을 다룬 문제작이라는 걸요.

    메인이미지

     하지만 지금 여기서 '사람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2001년, 강산이 변하고 또 한 번 더 변했을 15년 전 일이 떠올랐거든요.
     맞아요. 당신은 바로 알아챘겠죠? 그 무렵 당신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
     당신의 말 한마디가 빌미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일부 진보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비유했습니다.
     소위 '홍위병 파문'이었죠.
     당신의 말이 지은 죗값은 당신의 책들이 달게 받았습니다.
     옥천에서 책 화형식이 열렸고, 마녀사냥을 당한 당신 책들은 몸을 뒤채며 뜨거운 불꽃 속에서 활활 타올랐습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당신의 책들은 실로 엄청난 양이었죠.
     격앙된 군중들은 책 무더기에 불을 놓고 큰소리로 당신을 비난했습니다.
     언론들은 그 소식을 앞 다투어 보도했고 저도 그 장면을 신문과 TV를 통해 목도했지요.
     창작이 곧 창조라면, 당신은 당신 자식들이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보는 참담한 부모의 심정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메인이미지

     훗날 당신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2001년은 본격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었다. 그 전파력에 힘입어 내 작품은 읽지도 않고 나를 비난하는 세대가 형성되었고, 나는 괴물이 되어갔다.'
     맞아요. 정치적 스펙트럼 안에 당신을 끼워 맞추어 보수꼴통이니 뭐니, 이런 말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그만큼 영향력 있는 작가, 주목받는 인사, 그렇기에 조금 더 언행을 조심했어야 할 공인이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인 평가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해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 개인뿐 아니라 막 변화하려는 한국사회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맞아요. 당신은 그 사건 이후로 '현존 작가 중 가장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정치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당신을 동경해서라 던지, 선망해서라 던지, 그런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발언이 아닌, 당신의 작품으로 당신을 이해했거든요.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쓴 '삼국지'에 대해 극찬을 하더군요.
     한때는 '서울대에 입학하려면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는 얼치기 입시정보가 나돌아 학부모들의 지갑을 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삼국지는 당신이 지은 책이 아니지요. 당신은 단지 그것을 당신의 방식대로 평역 했을 뿐.
     당신 스스로도 삼국지가 당신의 대표작처럼 되어가는 모양이 썩 달갑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내 책을 읽어봤느냐고 물으면, 기껏해야 '삼국지'를 댄다. 그건 원작자가 따로 있는데…'라고,
     당신이 약간 쓸쓸하게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는 것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운운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당신 글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금시조', '변경', '황제를 위하여' 등을 당신의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이야기하려는 책을 언급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요.

    메인이미지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있죠.
     계절이 변할 때, 관계가 시작되거나 끝날 때, 몸이나 마음을 크게 앓고 나서 두고두고 다시 보게 되는 영화나 책 같은 거요.
     '젊은 날의 초상'은 저에게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멋모르고 읽었고, 대학시절 다시금 읽었고, 직장을 다니면서 또다시 펼쳐보았지요.
     당신의 문장들은 카멜레온처럼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가 유치할 정도로 현학적이었다가 때론 잘 썼다는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도 했습니다.
     꽤 많은 독자들이 '주인공이 소모적으로 방황하는 이유가 뭔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는데,
     글쎄요.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거기 있지 않나요? 제가 당신의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나요?
     당신은 '젊은 날의 초상' 작가 후기에 이렇게 썼죠.
     '비록 턱없는 감상과 애정 때문에 극적인 과장과 미화(美化)의 폐해를 입고 있긴 해도 이 갈피갈피에는 무슨 열병처럼 지나온 내 젊은 날들이 영원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숨쉬고 있다. 앞으로 내가 문학적으로는 이보다 얼마나 더 완벽한 글을 쓰게 되든, 그리고 또 어떤 평자가 어떤 평을 하든, 내 가장 큰 애착은 항상 이 책 위에 머무를 것이다.'
     후기를 읽고 알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거듭 읽는 이유와 당신이 가진 애착이 같은 종류의 사랑이라는 것을요.

    메인이미지
    메인이미지

     '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항상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내가 열아홉 나이를 넘긴 강진(江盡)에서의 열 달 남짓이 바로 그러하였다. 강진은 이름처럼 낙동강이 다하여 남해바다와 합쳐지는 곳에 자리 잡은 포구로, 마을 앞을 흐르는 것은 넓은 대로 아직 강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물은 거기서부터 육십 리 상류까지 이미 소금물이었다. 행정구역으로는 그 무렵 갓 직할시가 된 부산시에 속해 있었는데 대도회의 일부라는 표지는 겨우 잊을 만하면 나타나던 시내버스 정도였다. 내가 그곳에 가게 된 경위나 그때의 내 신세를 생각하면 지금도 약간은 한심하다. 그 열흘 전쯤 나는 어느 낯선 도시의 싸구려 하숙방에서 형에게 길고 간곡한 편지를 썼었다. … 거기다가 실은 나도 어지간히 지쳐 있었다. 내가 형에게 편지를 낼 무렵의 일기장을 보면 이런 되다 만 시구가 눈에 띈다.

    메인이미지

     지상의 모든 방랑자들이
     거룩한 안식을 노래하던 저녁도
     나는 어둡고 낯선 길 위에서
     피로의 슬픔 삼아 울었노라.
     
     형의 답장이 유달리 감격스러웠던 데는 그 피로도 분명 한몫을 하고 있었다.' - 민음사/이문열/'젊은날의 초상 - 하구(河口)' 10페이지
     
     
     '혜연(慧燕). 헤어진 지 십 년이 넘는 지금 다시 그대를 불러보는 나의 감회 새롭고 애련한 바 있다. 근년에야 듣게 된 소식은 두 아이를 둔 그대가 어느 작은 도시의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도 나는 열린 창가에서 회색으로 낮게 드리운 도회의 하늘을 바라보면 까닭 없이 마음 설레는 수가 있다.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것은 오월의 창가였다. 나는 조금의 과장이나 거짓 없이 그대가 원한다면 학교 옥상에서라도 뛰어내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해를 따주시겠어요?" 그때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었다. "물론이죠. 따드리고말고." …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행복한 날을 꾸몄던 보석이나 꽃다발이 아니라 괴로움의 날에 받았던 상처의 흉터다. 돌아보기조차 쓸쓸한, 비뚤어진 자의식의 초상. 우선 그대와 나는 살아온 과정부터가 일부러 대비시키려고 찾아세운 듯 달랐다. 고아나 다를 바 없이 떠돌며 자랐고, 배움의 태반을 정규 학교를 거치지 못한 채 대학에 온 나에 비해, 그대는 유복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초등학교부터 명문만을 골라 거쳐온 영양(令孃)이었다. 냉정히 돌이켜보면, 우리들의 무분별한 열정을 유발한 것은 바로 그런 상반된 삶의 과정에 대한 서로 간의 호기심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리하여 그대가 진실로 사랑했던 것은 나 자신이나 나의 글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풍기는 신산스런 지난 삶에 대한 흥미였던 것처럼, 내가 정말로 매혹된 것 또한 그대의 명석한 사고나 우아한 기품이 아니라 그걸 길러낸 축복받은 삶의 환경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민음사/이문열/'젊은 날의 초상 - 우리 기쁜 젊은 날' 131페이지
     
     
     '이제 그 겨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한 가정을 거느렸고, 매일매일 점잖은 복장과 성실한 표정으로 나가야 할 직장도 있다. 지금부터 꼭 십이 년 전이 되는 그해 겨울 나는 경상북도 어느 산촌의 술집에서 허드레 일꾼으로 있었다. 내가 거기서 맡은 일은 주로 그 아홉 개의 방에 걸린 남포등이 항상 밝고 고른 빛을 내게 하는 것과 그 온돌을 밤새도록 따뜻하게 데워놓는 것이었다. 그곳의 추억 속에서 아무래도 잊지 못할 것은 색시들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던, 그러나 더 자주는 쓸쓸하고 가엾던 그녀들. 그녀들의 생활은 일견 유쾌하면서도 눈물겨웠다. 이른 저녁 물찬 제비와 같이 맵시 있는 한복 차림에 정성 들인 화장을 마친 그녀들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알맞게 술이 오른 그녀들이 신나게 유행가 가락을 뽑아 올리거나 깔깔거리고 있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즐거운 인생도 있구나 싶었다. 손님들의 옷깃이나 버선목에서 당시 가장 고액권이었던 오백 원짜리를 몇 장이고 꺼내는 것을 볼 때는 괜찮은 직업도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완전히 알몸인 채 짖궂은 손님에게 곤욕을 당하거나, 무리하게 섞어 마신 술로 정신없이 게워내고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녀들은 그대로 연민이었다. 젖먹이를 떼놓고 와 불어 오른 젖 때문에 며칠이나 잠 못 자던 색시, 복역 중인 남편을 면회하러 주일마다 교도소로 가던 색시, 계모 밑에 남겨둔 오랍동생이 그리워 밤마다 눈물짓던 색시, 온몸에 담뱃불과 매질로 흉터 투성이던 색시, 그러나 바로 자기를 그렇게 만든 남자를 못 잊어 술만 취하면 아무나 붙들고 늦도록 신세타령을 하던 그녀의 치정도 추억하면 눈물겹다.' - 민음사/이문열/'젊은 날의 초상 - 그해 겨울' 198페이지
     
    메인이미지

     당신이 쓴 책을 읽고 야금야금 자라난 저는 어느덧 삼십대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많이 변하셨더군요.
     당신 책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던 호전성과 공격성으로 똘똘 뭉친 눈빛은 사라지고
     하얗게 샌 머리가 썩 잘 어울리는 원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앞서 말했죠? 저는 당신 글로써 당신을 이해했다고.
     당신의 성장배경을 모른 채 '젊은 날의 초상'을 읽었을 때
     혹시 이 소설이 당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었고,
     후에 당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 그 짐작이 사실일거라 확신했습니다.
     엘리트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월북하면서 가세가 기운 것, 정규교육 과정 대부분을 중퇴했던 것,
     연거푸 사법고시에 떨어졌던 것, 그리하여 젊은 시절 많은 부분이 확신 없는 방황으로 점철되었다는 걸 말입니다.
     
     얼마 전 홀로 모교에 다녀왔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듯 학교의 풍광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름답던 해안은 산업단지로 변했고 방파제가 있던 자리엔 잔디가 심겨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주변 여기저기 산단 분양 공고가 나붙어 있었고 새로 입주한 기업들이 막 활기를 띄고 있었어요.
     기분이 어땠냐고요? 글쎄요.
     나이 먹은 당신이 어느 한 시절을 돌아보며 '초상'이라 추억하듯
     저에게도 개연성은 부족하지만 소모적으로 시간을 소비하며 방황해야했던 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 계절을 우리가 '젊은날'이라 부른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많이 변했고, 또 다시 변해갈 거라는 것.
     그것을 미루어 짐작하고 의연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자세만이 저 스산한 풍광을 앞에 두고 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1981년 출판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하구(河口)',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 로 이어지는 3부작 연작소설로, 각각의 작품이 독립된 중편소설이다. 주인공 '영훈'이 겪는 고뇌를 자세히 묘사한 성장소설의 모습을 보인다. 과잉된 자의식, 폭발적 감정,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무력감을 어쩌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영훈'의 모습은 이문열 자전적 색채가 짙다. 부산에서 입시준비를 하던 시절을 담은 '하구(河口)',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을 담은 '우리 기쁜 젊은 날', 경북 어느 산골에서 요정의 허드레 일꾼으로 지내며 비로소 내적으로 세상과 화해하는 시절을 담은 '그해 겨울'로 이어지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객관적으로 과거를 서술한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유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