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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19) 사천 노산공원과 시인 박재삼의 바다

삼천포 아가씨 기다리는 시심 일렁이는 길

  • 기사입력 : 2015-12-1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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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 노산공원 앞 바닷가에 세워진 ‘삼천포 아가씨상’.


    <삼천포 아가씨> - 은방울 자매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 년이요 이 년이요 돌아와요 네에~ 돌아와요 네에~ 삼천포 내 고향으로


    ♬ 조개껍질 옹기종기 포개놓은 백사장에 소꿉장난하던 시절 잊~었나 님이시여
    이 배 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만은 기다려요 네에~ 기다려요 네에~ 삼천포 아가씨는


    ♪꽃 한 송이 꺾어들고 선창가에 나와서서 님을 싣고 떠난 배를 날~마다 기다려도
    그 배만은 오건마는 님은 영영 안 오시나 울고 가요 네에~ 울고 가요 네에~ 삼천포 아가씨는



    님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망부석이 됐을까요?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낸 후…, 기다리는 날이 깊어 갈수록 여인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킬 때마다 여인의 가슴은 시렸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여인은 그 자리에서 돌(石)이 됐습니다. 사천시 서금동 노산공원 앞 바닷가에 앉은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바닷가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은 1960년대 인기를 누렸던 은방울 자매의 노래 ‘삼천포 아가씨’가 주인공입니다.

    소달구지가 거리를 누비던 1960~70년대는 교통수단이 수월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산, 부산, 여수, 통영 등으로 가려면 버스보다는 연안여객선을 훨씬 많이 이용했습니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지금은 연안여객선들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삶의 애환과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반야월 선생이 작사하고 은방울 자매가 부른 ‘삼천포 아가씨’는 실제 있었던 사연을 노랫말로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삼천포의 한 여인이 고시공부를 위해 서울로 떠난 남자를 잊지 못해 날마다 연안여객선이 오가는 바닷가에 서서 사랑하는 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라네요.

    노산공원 앞 바닷가에 홀로 앉은 여인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들려오는 은방울 자매의 노래 ‘삼천포 아가씨’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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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산공원의 박재삼 시비.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는 한(恨)이 돼 들려옵니다. 아무 말없이 갯바위에 다소곳이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당시 이 노래가 얼마나 유명했으면 자그마한 항구도시인 삼천포가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을까요…?

    바다와 잇닿은 노산공원의 해안 목재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삼천포 아가씨상(像)’을 만납니다. 햇살이 좋은 어느 겨울날에 만난 여인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를 만난 후 조금만 더 나아가면 노산공원의 절경 팔각전망대에 이릅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노산공원의 풍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전망대에 서서 저 멀리 오른편을 바라보면 남해와 사천을 잇는 ‘남해·창선교대교’가 위용을 드러내고, 북으로 눈을 돌리면 와룡산과 각산이, 남으로는 큰 호수 같은 잔잔한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드러납니다.

    목섬, 씨앗섬, 장구섬, 신수도…, 올망졸망한 섬들이 이어진 풍광과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작은 배와 유람선들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박재삼도 이런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겠지요.

    노산공원을 논함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박재삼 선생입니다. 이 공원에 오면 박재삼 선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생은 이곳에 올라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이슬 같은 시심을 길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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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 서금동 노산공원 가는 길


    시인 박재삼(1933~1997)은 중학교 때 은사 김상옥 시조시인을 만나 문학수업에 빠졌고, 1953년 월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가,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섭리’, ‘정적’ 등이 추천돼 등단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는 가난과 억울함 등을 우리의 전통적 가락에 잘 담아내 ‘한국적 한 (恨)을 아름답게 잘 풀어낸 시인’, ‘슬픔의 연금술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노산공원 팔각전망대를 지나 조금만 오르면 박재삼 선생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박재삼 문학관’이 나옵니다.

    공원 한편에 세워진 박재삼 선생의 시비에는 그의 대표적인 시 ‘천년의 바람’ 일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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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삼 시인 사진과 흉상.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아, 보아라 보아라/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시는 바람이 한사코 가지를 찾아와 간지럽히고 있지만 결코 나무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평생을 ‘무소유’로 살다 간 선생의 삶의 철학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노산공원은 이처럼 많은 것을 가진, 작지만 알진 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삶의 활력소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삶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공원을 돌아 ‘박재삼 문학관’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그의 시들이 존재의 가치를 전합니다. ‘내고향 바다 치수’,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아득하면 되리라’…등.

    자연스레 언덕 위 아담하게 자리 잡은 박재삼 문학관으로 발길이 향합니다. 문학관 입구에 이르면 박재삼 시인이 마중이라도 나온 양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우리를 반깁니다. 옆집 아저씨 같은 그의 모습에 정감이 흐릅니다.

    문학관 안에는 바다가 낳은 시인 박재삼의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연보와 소박하고 정 많은 시인의 성품을 잘 나타내는 다양한 유품, 그리고 주옥같은 시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노산공원을 사랑한 시인은 우리들에게 주옥같은 시의 선율과 아름다운 삶의 철학을 선물하며 많은 것을 듣고 깨우치게 합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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