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르포] 경남어민들 ‘어업권 사수’ 해상시위 가보니…

조업 멈추고 생계 위해 ‘출정’

  • 기사입력 : 2015-07-22 22:00:00
  •   

  • 어민들은 기자에게 ‘오늘 바다로 출정을 나간다’고 말했다. 출항(出港)이 아닌 출정 (出征). 그들에게 이것은 ‘생계’가 걸린 일종의 전쟁이다.

    이날 미조항에 모여든 어선은 어림잡아 400척. 사천과 남해 일대 고기잡이 배들이 일제히 조업을 멈춘 날이었다.

    메인이미지
    경남 어민들이 22일 오후 남해군 미조항 수협 앞에서 어업권 사수를 위한 경남연근해조업구역대책위원회 출정식을 가졌다. 어민들이 최근 대법원이 '해상 조업 경계구역 존재' 판결로 전남과 맞붙은 황금어장을 잃게 되자 조업을 중단한 채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 마산 통영 거제 고성 하동 등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 어민들도 붉은 띠를 이마에 두르고 운집했다. 바다의 법칙은 ‘네 땅’과 ‘내 땅’의 구분이 뚜렷한 땅의 법칙과 달라, 어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경남 바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불렀다.

    출정식을 마친 어민들은 각자의 ‘전함’에 몸을 실었다. 새벽부터 날씨가 궂고 파고는 높았다. 뱃머리에 걸린 높은 조릿대 마다 ‘뭉치자 경남도민’ ‘사수하자 경남바다’‘살길없다 경남어민 대법원이 책임쳐라’ 등의 호전적 문구가 흔들렸다.

    이들이 해상시위를 벌일 구간은 경남과 전남 해상경계에 자리한 소치도와 백서 부근을 돌아오는 10㎞가량.

    남해 어선인 ‘덕숭호’가 선두에 서고 400여 척이 4열 종대를 이뤄 따랐다.

    덕숭호 깃대에는 ‘경남근해어업 조업구역대책위’ 문구가 걸렸고, 그 뒤를 따르는 일진(一陣) 어선 4척에는 오방색을 넣은 기가 걸렸다.

    기자는 대오를 정비하는 낚싯배에 몸을 실었다. 미조항을 벗어나 한바다로 나가자, 어선들이 해풍을 가르며 일제히 뒤를 따랐다.

    ‘고기 낚을 다른 바다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바다도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로 ‘전남 바다’로 규정되버린 해상은 멸치조업이 활발한 곳이다. 소형 어선들도 이 일대에서 겨울엔 메기를, 봄·가을엔 각종 돔을 낚아 생계를 잇는다. 자식들 등록금도 낚고, 손주들 용돈도 낚는 ‘황금어장’이다.

    1시간여쯤을 달려 경남과 전남 최단 경계선과 맞물린 백서 부근에 다다랐다. 어선들이 자리를 잡고 대오를 정비했다. 덕숭호가 여수 쪽으로 뱃머리를 틀자 뒤 따라오던 400척도 일제히 뱃머리를 돌렸다. 경계선을 공격하듯 몰려든 형세였다. 대포는 없지만 마치 모든 어선이 대포를 장전한 느낌이다.

    경계에 걸쳐있는 어선들을 향해 해경 경비정이 경고음을 울리며 수신호를 보냈다. “좌현변침하면 안 됩니다. 우현변침 하십시오.” 라는 다급한 방송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좌현은 여수, 우현은 남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어선은 해경과 대치했다. 긴장감이 흐르는 10여분 동안 이 주위를 4~5척의 해경 경비정이 에워싸 항로변경을 촉구했다. 신경전을 벌인 뒤 덕숭호는 급하게 우현으로 키를 틀어 미조항으로 향했다. 배의 움직임에도 격앙된 감정이 묻어났다. 다수의 어선들이 게릴라전을 치르듯 경계부근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해상경계에 대한 법적조항은 없다.” 이것이 이날 어민들이 외친 구호였다. ‘전남어민과 경남어민 모두 동료가 될 수는 없는가’하는 기자의 질문에 한 어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땅의 법칙과 바다의 법칙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대법원이 이러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김유경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유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