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열린포럼] 이념 양극화에 대한 오해- 김욱(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04-16 07:00:00
  •   
  • 메인이미지

    한국 정치를 부정적으로 특징짓는 대표적인 표현은 지역주의와 이념 양극화일 것이다. 지역주의의 병폐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념 양극화 현상은 적지 않은 오해와 혼란이 있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중요해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이념 갈등이 부상하면서 지역 갈등이 한국 정치에서 누리던 독점적 영향력이 완화돼 초창기의 이념 갈등은 오히려 긍정적 시각에서 해석됐다. 그런데 최근 이념 갈등이 이념 양극화 현상으로 표현되면서, 지역주의에 버금가는 한국 정치의 병폐로 묘사된다.

    먼저 이념 갈등 그 자체는 결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어떠한 갈등이든 그것이 표출되지 않고 숨어 있는 것보다는 표출되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의 신호이다. 특히 사회의 다양한 갈등 중에서도 이념 갈등은 다른 갈등에 비해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지역 갈등이나 세대 갈등보다 이념 갈등은 타협점을 찾기가 쉽기 때문이다. 영남과 호남이 대립할 때는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충돌할 경우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대변해 주는 세대를 발견하기 어렵다. 반면 보수-진보 간의 갈등에서는 정책적 타협이 가능한데, 그것은 보수와 진보가 기본적으로 연속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념 갈등이 다른 갈등에 비해 바람직한 또 다른 이유는 정책에 대한 입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특정한 이념성향을 가진다는 것은 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선호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유권자는 경제성장 정책을 선호하고 진보적 유권자는 성장보다는 환경보호 정책을 중시한다. 유권자들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분명히 나눠지고 대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의 정치의식이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보다 민주정치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에서 보수-진보 이념 갈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균열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념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표현이 중도 혹은 중도실용주의다. 그런데 중도란 분명한 이념성향을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를 관용하고 이해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나 입장 없이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중도실용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중도 세력은 자기 입장을 갖고 있지만 상대를 부정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관용과 타협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이다.

    한국에서 이념 갈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보수-진보 간 타협이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념 갈등이나 양극화를 문제 삼기보다는 양자 간 타협이 한국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념 갈등이 갖는 특수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단국가라는 현실이다. 반공, 친북과 연계되면서 이념 갈등은 타협 가능한 정책적 대립보다는 타협이 어려운 감정적 대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특수성은 이념 갈등이 세대 갈등과 중첩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결과,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신세대 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이념 갈등과 중첩돼 기성세대는 보수,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이념 갈등이 세대 간에 존재하는 기본 가치관의 차이와 결합돼 있기 때문에 그만큼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다.

    서구 국가보다 한국 유권자가 이념적으로 더욱 분극화돼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이념 양극화를 내세우며 유권자가 정책적 입장을 갖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한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을 없애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이념을 관용하고 타협하는 성숙함이다. 이러한 성숙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