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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촌보불양(寸步不讓)- 한 치의 걸음도 양보하지 않는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 기사입력 : 2013-09-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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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15년 동안 임금 노릇하던 광해군(光海君)은 왕위에서 쫓겨났다. 반정 군사들에게 붙들려 자기의 계모에 해당되는 선조(宣祖)의 계비(繼妃) 인목대비(仁穆大妃) 앞에 무릎을 꿇린 채 자신의 죄상을 하나하나 듣고 있었다. 어제까지 기세등등하던 임금님에서 계단 아래에 꿇린 죄수가 되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광해군을 둘러싸고 실권을 잡았던 대북정권(大北政權)에 참여했던 이이첨(李爾瞻) 등 조정 신하들은 거의 대부분 사형 또는 귀양 가거나 해서 대북파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인조를 중심으로 한 서인들이 상당 기간 일을 계획하고 준비했는데도 정권을 잡고 있던 대북파에서는 왜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너무 일당독재에 도취가 되어 상대파의 움직임을 몰랐던 것이다.

    대북파들이 자기 당파의 사람만 쓰다 보니 배척당한 당파 사람들의 결집을 촉진하게 되어 마침내 인조반정을 초래하게 되었다.

    선조 말년부터 광해조 전체에 걸쳐 조정에 진출하여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 정인홍(鄭仁弘)이었다. 그는 임금의 신임을 두터이 받아 관직이 영의정에까지 이르렀고 영향력도 대단히 컸다. 그러나 그는 강직하나 포용력이 부족하여 다른 학파는 물론이고, 사소한 일로 남명학파에 속하는 일부 인사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당시 같은 대북파(大北派)에 속하던 허균(許筠)마저도 정인홍 등 대북파의 권력 독점에 대해서 그 불합리성을 이렇게 지적하였다. “성우계(成牛溪)나 이율곡(李栗谷)의 문인 가운데는 재주를 가지고서도 아래 자리에 침체되어 있는 사람이 매우 많다. 관작(官爵)이란 것은 국가 공공의 기구이다. 천지와 사계절에는 순환이 있다. 어찌 오로지 한쪽 사람들에게만 벼슬을 주어 어진 인재로 하여금 하급관료의 자리에서 헛되이 늙게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하늘이 인재를 낳은 어진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대표가 만나달라면 쉽게 만나주면 된다. 필요할 때는 자신이 먼저 야당 대표에게 만나자고 하여 만나면 된다. 그러면 야당 대표의 체면도 살려주고 정국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 만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일로 생각하여 목을 매면서 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만나 주지 않으니까, 야당이 도리어 단합하는 것이다.

    야당의 인물 가운데서 적절한 인재가 있으면 장관이나 공공기관의 장으로 앉혀야 한다. 그러면 야당의 단합이 느슨해지고, 투쟁의 강도도 약해질 수가 있다.

    김한길 대표도 꼭 대통령이 내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매일 시위를 벌이지만, 다음에 만나자 하고 자기가 해야 할 다른 일을 하면 될 것이다. 대통령을 꼭 만나야 하겠다고 더운 여름에 계속 집회를 하니, 야당이 아무것도 못하고 국회가 아무것도 못한다.

    이번 국회는 좀 조용할까 기대했는데, 더 시끄럽다. 자기 주장만 하고 상대방은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이 크게 보면 승리하는 방법이다. 먼저 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 寸 : 마디 촌. * 步 : 걸음 보. * 不 : 아니 불. * 讓 : 양보할 양.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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