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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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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화호유구(畵虎類狗)-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개처럼 된다

  • 기사입력 : 2013-06-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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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전라도 어떤 지역의 역사문화연구단체를 텔레비전에서 소개했다. 그 연구단체에서 연대를 모르던 비석을 명(明)나라 홍무(洪武·1368~1398) 연간의 비석이라고 고증해 냈다. 그러자 그 후손들이 잃어버린 조상의 묘소를 찾았다고 고마워하며 제수를 차려와 제사를 올리고 앞으로 재실을 짓는 등 대대적으로 묘소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단체에서 홍무시대의 비석이라고 고증해 낸 근거가 ‘홍무(洪武)’라는 한자의 ‘무(武)’자에서 획(劃)을 하나 빼어 줄였다는 것이다. 피휘(避諱)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그 글자의 획수를 하나 줄이는 것이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성현(聖賢)이나 임금, 조상의 이름을 존중해 그대로 부르지 않는다. 유교 경전(經典) 등을 읽다가 공자(孔子), 맹자(孟子)의 이름이 나오면 발음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간다. 그 밖의 방법으로 그 글자와 뜻이 같은 다른 모양의 글자를 쓰거나, 글자의 획을 하나 줄여서 쓴다. 예를 들면 ‘대구(大丘)’라고 쓰다가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 글자이기 때문에 ‘대구(大邱)’로 바꾸어 쓴 것이다.

    ‘휘법(諱法)’ 또는 ‘피휘법(避諱法)’이 있지만, 연호(年號)를 피휘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그 연구단체의 고증은 완전히 근거 없는 엉터리다.

    5년여의 공사 끝에 숭례문(崇禮門)을 복원해 준공했다. 옛날 법도를 흉내내어 상량문(上梁文)도 지어 걸고, 준공하는 날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상량문을 지었는데, 상량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한글로 지은 것으로 상량문 같지도 않다. 고유제는 고유제로서 본래 정해진 전례(典禮)가 있는데, 고유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겨우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멋지게 어떤 일을 하거나 본받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잘못될 때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도리어 개처럼 된다’는 말이 있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 때 명장인 마원(馬援))은 많은 무공을 세웠다. 그에게는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그들은 남의 흉보기를 즐기고, 협객으로 자처하며 건달들과 어울리는 등 사람됨이 경솔했다. 변방에 정벌하러 나간 마원의 귀에 조카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마원은 조카들에게 훈계의 편지를 보냈다.

    “남의 약점을 들었을 때 부모님의 이름을 들었을 때와 같이 귀로 들을지라도 입 밖에 내지 않기를 바란다. 남의 흉을 보는 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용백고(龍伯高)는 사람됨이 중후해 불필요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으니, 너희들이 그를 좇아 배우기를 바란다. 두계량(杜季良)은 호협하여 남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너희들이 그를 좇아 배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용백고를 좇아 배운다면, 그와 같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착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될 것이니, 이른바 고니를 그리려다가 오리를 그린 격이 되어 그럭저럭 같은 새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두계량을 제대로 좇아 배우지 못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경박한 인물로 그칠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좋은 일을 하거나 배우려면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충 하다가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고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 畵 : 그림 화. * 虎 : 범 호.

    * 類 : 같을 류. * 狗 : 개 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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