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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기약폐리(棄若弊履)- 닳은 신처럼 버린다

  • 기사입력 : 2013-06-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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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의 물건은 쓰다가 닳으면 버리는데, 버리는 많은 물건 가운데서도 닳으면 사정없이 버리는 것이 있나니 바로 헌 신발이다.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정없이 버리는 것을 비유해 ‘헌신짝 버리듯이 한다’, ‘헌 짚신 버리듯이 한다’는 말이 관용적으로 쓰여 왔다. 사람을 버리거나 신의(信義)를 버릴 때도 이런 말을 썼다.

    기대를 모았던 남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북한은 남한대표의 격을 이유로 회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전 세계 200여 개 나라가 있지만, 가장 신의를 지키지 않고 다루기 어려운 집단이 북한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1972년 7·4공동선언으로부터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6·15선언, 2007년 노무현-김정일 합의 등 북한과 그동안 수많은 약속이나 합의를 했는데, 우리는 대부분 지켰지만, 북한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개인 사이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하고는 약속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한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고 또 여러 번 속아서 그럴 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과 대화를 완전히 단절하고 남남으로 그냥 지낼 수는 없다.

    지금 당장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나 장차 통일을 하기 위해서도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멋대로 하는 북한을 보고도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은 대화 창구로 나오라”고 계속 촉구하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는 북한이 대화에 나와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서 격은 아예 따지지도 않았고, 또 대화에 나오기만 하면, 그 대가가 반드시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제대로 대화를 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무조건 대화에 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트집을 잡아 회담을 취소한 것이다.

    북한이 갑자기 회담을 제의해 와 우리 정부도 상당히 희망을 갖고 접근했는데, 북한이 회담을 갑자기 제안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되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제스처로 회담을 제의했다가 자신들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자, 남북회담을 일거에 취소해 버린 것이고, 실제로는 회담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회담이 실질적으로 성사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의 비위를 맞추어 격을 높일 것은 없다.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지금 남한의 국론이 북한이 의도했던 대로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 잘했다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많지만, 야당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하찮은 격(格)을 따지다가 좋은 대화의 기회를 놓쳤다”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가 없고, 도발을 일삼는 것은 북한인데,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만 비판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정부는 보여주기식 대북정책 회담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남북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과 진통이 따르더라도 합의를 하나하나 해 나가야 한다.

    결국 남북대화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생트집 무력도발 회담 목적달성이라는 술수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북한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의 관행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棄 : 버릴 기. * 若 : 같을 약.

    * 弊 : 떨어질 폐. * 履 : 신 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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