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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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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보사사은(報謝師恩)-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여 감사한다

  • 기사입력 : 2013-05-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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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자신이 지금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첫째는 부모님, 둘째는 스승, 셋째는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님은 낳아주고 길러주고 모든 의식주, 학비 등을 감당했다. 스승은 가르쳐 주고 인격을 만들어 주었다. 국가는 질서를 잡아주고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그 외에도 은혜를 받은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혈연이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관계가 끊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 한다. 하늘이 정해준 질서라는 뜻이다.

    그러나 스승은 배움이 끝나면 떠나게 되는데, 배운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도 스승에게 배운 은혜를 자기 희생을 해가며 스승을 위한 일에 전력을 경주한 제자가 곳곳에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 가운데 대표적인 분이 이미 고인이 된 허선도(許善道) 교수라 생각된다. 이 분은 합천군 가회면(佳會面)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해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학문을 하기로 결심하고 서울대 사학과에 진학해 국사를 전공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강사가 됐다. 그러나 국사를 올바르게 연구하려면 한문에 대한 깊은 실력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대학에서 강독 몇 시간 한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수업 준비를 해 강의를 했지만, 강의를 하면서도 불안했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어느 날 결심했다. 자기와 같이 강의하던 후배 몇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하루하루 눈가림하는 이런 식으로 강의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 우리 장래를 위해서 우선 어렵더라도 한문공부 하러 가자. 산청에 가면 대학자 중재(重齋) 선생이 계신다.”

    그 길로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산청군 신등면(新等面) 땅골에서 평생 한문 연구와 강학에 전념하고 있던 중재 김황(金榥) 선생을 찾아가 제자로 입문했다.

    거기서 밖에 나오지 않고 7년 동안 공부했다. 웬만한 한문 기본 경전과 역사서 문집 등은 다 읽었다.

    다시 학계에 나타나니 눈이 달라졌다. 하루에 겨우 몇 줄 보던 한문이 줄줄 읽혔다. 방대한 사료를 빠른 속도로 마음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 뒤 육군사관학교와 국민대 등에서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쳤고, 국방 관계, 무기 관계의 권위자가 되었다.

    허 교수가 52세 되던 해 스승 중재 선생이 돌아가셨다. 중재 선생은 우리나라 역사상 한문으로 된 글을 가장 많이 지은 분이다.

    그가 지은 시문 원고는 장정이 짐으로 지면 한 짐이 될 정도로 많았다. 남의 비문만도 1000편이 넘는다. 이때 허 교수가 나섰다. 국판으로 1만 페이지 14책 분량의 순한문책을 활자화하고 구두점을 찍어 책을 내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또 출판 경비도 어마어마하였다. 이 모두를 허 교수 주도하에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헌신적인 노력을 하여 마침내 책을 완성하여 세상에 반포될 수 있었다.

    허선도 교수 같은 사람은 정말 스승의 가르쳐 준 은혜를 제대로 보답한 분이다.

    * 報 : 갚을 보. * 謝 : 감사할 사.

    * 師 : 스승 사. * 恩 : 은혜 은.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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