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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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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휘악부전(諱惡不悛)- 나쁜 점을 감추고 뉘우치지 않는다

  • 기사입력 : 2013-04-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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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日本)은 아득한 옛날부터 왜(倭)라고 불렀는데, 당(唐)나라 때 이르러 자기들이 일본이라 나라 이름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우리나라 및 중국을 오랫동안 무던히도 괴롭혀 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도 명(明)나라 때 가장 큰 골칫거리의 하나가 해안의 왜구 침략이었을 정도다. 1930년부터 중국대륙에서 침략전쟁을 일으켜 만주에 괴뢰정부를 세웠고, 북경 남경 상해가 다 일본의 손에 들어가는 등 대륙의 거의 80%가 일본 손에 넘어갔다. 그 외 필리핀 태국 미얀마 등등 일본으로 인해서 고통당한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2차대전 종전 후 전범 재판에서 일본은 5400여 명이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같은 침략국인 독일보다 훨씬 많은 숫자라 한다. 종전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1995년 8월 15일, 당시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내각회의의 결정에 근거하여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행한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 담화 가운데서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제국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반성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분명히 피력했다. 이 담화는 이후의 정권에도 계승되어, 일본정부의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로 가끔 인용된다.

    그런데 아베 일본 총리는 4월 23일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면서,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미 아베 총리는 22일 참의원 답변에서도 “아베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일본 교과서 검정에서의 ‘근린제국 배려조항’ 수정의 선봉장 역할을 하는 문부상도 ‘식민지 시혜론(施惠論)’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등 아베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동조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는데, 이는 예년의 30명 내지 80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며, 기록 확인이 가능한 1989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이다. 아베 총리는 제물을 바쳤고, 부총리 등 각료 3명도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전범 14명이 모셔져 있다. 이에 대한 참배를 두고 한국, 중국, 미국 등이 비판한 데 대해 일본 부총리는“야스쿠니 참배는 매년 해 온 일”이라면서 “새삼스럽게 이야기될 일은 아니다”고 강변했는데, 과거 민주당 내각 시절에는 각료의 공식 참배를 자제한 바 있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의미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면서 “근본적으로 아베 내각의 역사인식을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강한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화는 한국, 중국 등의 반발을 낳을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분출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적 경쟁과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잘못을 한 뒤가 문제다.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를 구하고 바른 길로 간다면 누가 나무라겠는가?

    요즈음 일본이 경제적으로 조금 나아지니까 아베 총리가 교만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솔직한 마음가짐으로 반성하여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일본의 미래나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훨씬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 諱 : 감출 휘, 꺼릴 휘. * 惡 : 나쁠 악. * 不 : 아니 불, 아닐 부. * 悛 : 뉘우칠 전, 고칠 전.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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