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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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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경남도 제1호 자원봉사왕’ 선정된 유외조 씨

25년째 날마다 목욕봉사하는 73세 할머니

  • 기사입력 : 2013-04-2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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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외조 할머니가 창원 희연병원에서 치매 환자의 발을 씻기고 있다.



    길 가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조차 친절을 베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척박한 세상에서 연꽃 같은 향기로 사는 사람이 있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치매나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매일 목욕시켜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5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에도 벅찬 나이. “아직은 건강하고 내가 더 많이 받는다”고 말하는 유외조(73·여·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동) 씨를 지난 18일 오전 창원시 성산구 반지동 희연병원 4층 요양센터에서 만났다. 유 할머니는 지난 3월 경남도가 자원봉사자 중 가장 봉사활동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올해 처음 주는 ‘경남도 제1호 자원봉사왕’으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1. 커튼 뒤로 의자에 앉은 낯 모르는 할머니를 열심히 씻기고 있다.

    때타월로 연신 문지르면서 “시원하죠? 안 아프죠?”하면서 하나하나 챙긴다. “하모, 개운하다”는 맞장구가 뒤따른다.

    “손님이 왔으니 이야기도 하고 잠시 쉬라”는 김래정(42·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수치료사의 말도 귓등으로 흘린다.

    김 수치료사가 “유 할머니는 매주 월, 수, 목, 토요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목욕봉사를 25년째 한다”고 거든다.

    “아이구 머리가 아파 죽겠다. 뭐하려고 자꾸 (신문에) 내려고 하느냐”고 나무란다.

    양해를 구해 커튼을 살짝 밀고 ‘현장’을 눈으로 봤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수건으로 연신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언뜻 봐서는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아니다.

    “완전 때밀이 전업했으면 돈 많이 벌었겠제”라면서 웃는다.

    “수억 원은 안 벌었겠나. 그러나 돈벌이로 했으면 지금까지 하지는 못 했을거야”라고 말한다.

    벌써 오늘 세 번째 목욕이란다.

    등을 밀어주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옷을 벗겨 의자에 앉히고 때를 밀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히는 반복 작업.

    “딸이나 아들보다 낫겠다”는 기자의 말에 목욕 순서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그렇제”라면서 한목소리로 대답한다.



    #2. 잠시 후 유 할머니가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생전에 못한 죄책감이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목욕도 시켜드리고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직장 다니고 집안일 하느라 못했다. 그랬던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말했다.

    유 할머니는 이어 “치매 어르신들이 다 부모 같고 오빠, 동생 같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봉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적십자, 부녀회 등 활동을 하면서 단체장을 많이 맡았단다. 특히 창원 럭키아파트 부녀회장으로 있을 때 폐품을 주워 팔아서 남을 돕는 일을 했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단체장을 맡다 보니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진정한 봉사를 하고 싶었고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치매병원 어르신 목욕봉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목욕 봉사에 특별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유 할머니는 웃으면서 “목욕 봉사에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 훗날 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묘한 느낌, 그리고 내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욕 중 가끔 실례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치매 노인들도 스스로 실례를 한 것은 안다. 자연스럽게 그런 분들은 나를 찾게 되고 그래서 또 찾고 봉사하고, 그러길 반복했다고 스스로 마다하지 않았던 25년 ‘가시밭길’을 남의 이야기하듯 말했다.



    #3. 목욕을 마치고 나면 오전 11시 30분부터는 급식 봉사를 한다. 어려운 이웃 중 무료급식을 위해 찾는 어르신이나 병원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반찬도 챙겨주고 그릇도 씻는다.

    “유 할머니를 10년 가까이 지켜봤다”는 시설장 이근순(32·창원시 성산구 가음정동) 씨가 “직원 한가지다. 허리를 펴는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고된 봉사에 가족들의 걱정이 많지 않느냐고 물었다.

    “몸이 어떻게 되나 걱정을 많이 한다. 가족들은 (나에게) 건강을 유지하면서 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목욕하고 돌본 환자들이 완쾌돼 다시 찾아올 때가 기분이 가장 좋다”면서 “치매나 장애를 앓는 분들이었는데 활동할 수 있어 나갔다가 다시 치료차 입원하거나 병원에 일이 있어 왔을 때 아는 척하면서 인사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장 슬플 때는 목욕시키던 환자가 많이 쇠약해졌을 때나 보이지 않을 때라고 했다. 보이지 않으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씩씩한 할머니도 눈물을 훔칠 때가 있단다.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기억날 때라고 말했다.



    #4. 유 할머니는 “이 같은 인터뷰가 손이 모자라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손길이 닿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좋은 뜻으로 숨은 봉사를 하는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미안함을 나타냈다.

    “언제까지 봉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내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활동을 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유 할머니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면서 “매일 8시간 가까이 봉사활동을 하고 하루에 6명 정도의 어르신을 목욕시키기 때문에 다른 활동이나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고 말해 질문한 기자를 무안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병들고 늙기 마련이다. 시간이 나면 봉사하라. 건강도 찾고 마음도 편해진다. 그러면 행운도 따를 것”이라는 할머니의 말이 아들에게 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말처럼 느껴졌다.


    글= 이병문 기자 bmw@knnews.co.kr

    사진= 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유외조 할머니는= 유 할머니는 옛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나이 쉰 된 아들이 있고 손자 손녀가 있다. 봉사실적이 집계된 지난 2002년부터 누적 시간이 1만 시간을 넘었다. 상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월 한 달간 도내에서 가장 많은 161시간을 봉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거의 일요일을 빼고 27일 동안 하루에 5.9시간씩 봉사를 한 셈이다. 창원시립치매병원, 창원 희연병원, 굿모닝요양병원, 세양요양병원 등에서 목욕과 급식 봉사를 한다. 20여 년간 통장을 했으며 적십자봉사회 회장 등 사회봉사 활동을 10여 년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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