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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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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인구책궁(引咎責躬)- 허물을 자신이 끌어안고 자신을 나무란다

  • 기사입력 : 2013-04-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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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 가운데서 글씨를 한 폭 써 달라는 등 무슨 부탁을 가끔 하는 일이 있을 때, 보통 자기가 직접 하지 않고 자기 친구나 조교를 통해서 몇 단계 둘러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쑥스럽고 겁이 나서 그랬다 한다.

    그러나 남에게 무슨 부탁을 할 때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 원칙이고 예의다. 학생들은 몰라서 그랬다 해도, 요즘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좀 있는 사람들이 글이나 글씨, 그림 등을 부탁할 적에 자기가 가지 않고 자기 비서나 부하를 보내는데, 이는 원칙적으로 큰 실례다. 특별한 사정이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친필 서한을 써서 들려보내거나 해야 한다. 아무 말도 없이 비서를 보내면 상대방을 자기 비서와 같은 급으로 취급하는 셈이 된다.

    특히 사과나 화해를 할 때는 자기가 직접 해야지 다른 사람을 시켜서는 안 된다. 자기 입으로 사과를 하든지 화해를 하든지 해야지, 다른 사람을 시키면 상대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 및 장관 후보자 가운데 6명이 이런 저런 사유로 중도 탈락했다. 검증이 미흡해 부적절한 인사를 임명한 것이다. 드디어 3월 30일 그 점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이 아니고, 비서실장 명의의 담화문을 비서실장이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대변인이 대독했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비서실장은 사과할 의무도 없고 사과문을 발표할 권한도 없다.

    17초 동안 한 무성의한 사과담화문이라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아닌 사람이 사과를 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모든 일을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대국민사과만은 대통령 명의로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에 “저는 국민을 하늘처럼 모시겠습니다”라고 한 말을 벌써 잊었는지?

    흔히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국민이 준 권한을 대행하는 것일 뿐이다.

    훌륭한 인재가 많이 있는데도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사람을 국무총리에 굳이 임명하려는 의도를 알 수가 없다. 헌법재판소장을 국무총리에 임명하면, 앞으로 대법원장 지낸 사람도 국무총리에 임명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투성이의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빨리 갈아치우지 않고 40여 일 동안 끈 것도 문제다. 군인들 가운데 청렴하고 당당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그런 구질구질한 사람을 국방부장관에 앉히려 했는지 모르겠다. 50만 대군을 지휘하던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을 경호실장으로 임명한 것도 육군참모총장 자리를 비하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얽매인 것이나 빚진 것이 없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잘할 것이다”라는 기대를 받고 취임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인기도가 41%까지 내려갔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초기 인기도 중 최저를 기록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은 왜 그렇게 됐는지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궤도를 수정해 정말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100일은 보고 나서 말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처음에 잘못하면 끝까지 잘못할 수도 있다. 마라톤 선수가 운동화 끈을 잘못 맸으면 당장 고쳐야지 조금 더 뛰어보고 정 잘못 매었으면 그때 고치지 하다가는 발을 크게 상할 수가 있다. * 引 : 끌 인. * 咎 : 허물 구. * 責 : 책임 책. * 躬 : 몸 궁.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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