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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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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우포늪 지킴이 창녕군 관광해설사 김량한 씨

“어머니 품 같은 우포늪, 평생 품으며 살 겁니다”
창녕 석동마을의 성씨고가 방문 계기
2000년 직장 그만두고 고향 내려와

  • 기사입력 : 2013-01-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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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량한 씨가 우포늪을 가리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량한 씨가 7년간 살았던 성씨고가.


    “우포늪은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늪과 사람이 공존하는 근원을 만들어주고 있죠. 어머니의 따뜻한 품처럼 모든 것을 안아주고 있습니다.”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 우포가시연꽃마을에 사는 김량한(43) 씨가 우포늪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이다. 우포늪의 자연과 동식물이 좋아 30대 초반 다니던 직장을 접고 귀촌한 ‘우포늪 마니아’다. 군 관광해설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변변치 못한 돈벌이로 생활에 어려움이 많지만, 단지 우포늪이 좋아서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아 아끼고 가꿔가고 있다.

    ◆범상치 않은 첫인상

    지난 9일 우포가시연꽃마을에서 만난 김 씨는 외모부터 범상치 않았다. 수북이 기른 수염에 개량한복을 걸쳐 입고 나무를 말린 지팡이 같은 지휘봉. 중절모 같은 모자까지 쓰고 우포늪의 가장 ‘명당’으로 앞장선다. 영락없이 청학동 훈장님 태가 느껴진다. 이 같은 외모를 ‘고집’하는 이유가 사뭇 진지했다.

    “유년시절부터 어른이 되면 꼭 수염을 길러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람 얼굴 그림을 그려도 수염을 꼭 그렸다. 전통적인 어르신들의 모습을 이어가고 싶은 부분 때문이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를 보고 70~80세 할아버지 같다고 놀라는데 수염이 없으니까 너무 젊게 보여 가볍게 보더라. 수염은 전통을 이어가는 한 맥락에서 나만의 자존심이다.”

    이렇듯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수염을 고집하고 있다. 수염을 기르고 나니 자연히 한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수염에 어울리는 게 한복밖에 없더라. 그래서 20살 때부터 양복을 다 버리고 개량한복만 본격적으로 입게 됐다. 창녕의 전통적인 행사에 갈 때는 도포까지 입고 간다. 머리까지 기르긴 좀 그래서 모자를 쓰게 됐다.”

    ◆도시생활 접고 고향으로

    김 씨는 2000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전까지 대구에서 월급쟁이 직장인이었다.

    신당마을에 내려오기로 결심한 것은 처음에 우포늪 때문이 아니었다. 고향의 전통을 보호하고 싶어서였다.

    “유년시절부터 우리 전통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전통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가운데 쌓여 있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내 삶을 보람되게 살지 않겠나 싶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항상 유심히 지켜봐왔던 인근 석동마을의 대궐 같은 기와집인 성씨고가를 방문한 게 계기가 돼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성씨고가를 지나치면서 저 기와집에서 어느 재력가가 살고 있을까. 저런 집에 살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구경하러 들어갔다. 마당에서 닭 모이를 주고 있던 한 어르신에게 ‘왜 이 좋은 집이 비워져 있느냐’고 물으니 집주인이 이 집에 살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가 살면 어떻겠냐고 하자 대구에 있는 소유주인 성기상 푸드웰 회장을 만나게 해준 게 계기가 돼 7년 동안 성씨고가에 살았다.”

    성씨고가를 관리하고 살아주면 약간의 수고비도 준다고 해 31세 때 대구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직행했다.

    ◆우포늪 보호에 홀로 나서다

    성씨고가에서 방문객들을 안내하면서 살다 보니 성씨고가에 관심이 많은 분들 중에 창녕환경운동연합 일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연결이 돼 2002년 창녕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들어가게 됐고 우포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나이가 젊다 보니 기존 회원들과 마찰도 많았다. 우포늪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곧바로 지적하고 언론매체에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공개를 하다 보니 군청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 좋지 않은 시각이 많았다.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존 회원들과 도의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고, 제가 그분들에게 결례가 되겠구나 느꼈다. 그래서 나와 달리 움직이는 사람들과 선을 긋기로 했다. 그분들과 함께 일하지 않고 제 양심적으로 우포를 보호하고 싶었다. 우포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저 혼자라도 관계 기관에 충분히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곧바로 환경운동연합에서 탈퇴를 한 이후 지역의 NGO단체 등에 전혀 소속되지 않은 채 10여 년 동안 독자적으로 우포늪을 보살펴오고 있다. 오랫동안 홀로 우포늪에 애착을 쏟아오면서 주변인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행정기관과 지역주민들이 우포에 대한 잘잘못이 다 드러나니까 저를 몹시 싫어했다. 이들을 만나 대화와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저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저를 무시했는데, 지금은 문제를 제기하면 행정기관과 주민들이 나서 다 수용을 하고 있다.”

    ◆우포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

    창녕군 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관광객과 탐방객이 있으나 없으나 매일 우포늪을 찾아간다. 우포늪의 수생·육상 식물과 곤충, 철새 등 각종 동식물들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다.

    “우포늪에는 단지 늪만 있는 것이 아니라 1700여 종의 동식물을 비롯한 사람의 삶과 연관된 여러 가지 환경과 이야기가 있다. 인터넷 자료만 가지고는 이 같은 내용들을 샅샅이 알 수가 없다. 매일매일 찾아와 공부를 해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속속들이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포늪을 가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탁 트인 우포늪에는 갈 때마다 충전되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이 있어서다.

    “우포늪은 수만 마리의 철새가 와도 언제든지 아낌없이 먹이를 제공해주고, 물이 범람해도 홍수조절기능으로 수해를 막아주고 있지 않은가. 우포를 보면 누구든지 말하겠지만 어머니의 품 같은 느낌이다. 끊임없이 포옹을 해주는 어머니의 품이다. 늪과 사람이 공존하는 근원을 만들어주는 따뜻한 품처럼 모든 것을 안아준다.”

    김 씨는 제방에 올라 물과 갈대와 하늘이 맞대고 있는 멀리 펼쳐진 우포늪 풍광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우포, 평생 지키고 싶다

    신당마을에는 10년 넘게 우포늪 환경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주영학(65) 씨가 있다. 매일같이 우포늪을 지켜온 공로로 지난해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활발한 환경지킴이 활동을 못하고 있어 김 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주영학 선생님은 ‘살아있는 우포늪’과 같다. 선생님의 집에 가면 온통 우포와 관련한 자료들로 가득차 있다. 우포의 박물관이다.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추운 겨울에는 제가 대신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를 이어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일까. 김 씨의 앞으로 계획에는 우포늪과 문화재 보호밖에 없다. 평생 동안 당마을을 떠나지 않을 각오가 더욱 마음 속 깊이 박혀버렸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여기를 지키고 알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고향을 떠날 계획도 없고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이 일을 하고 싶다. 거의 봉사활동이다 보니 생활적으로 당연히 어렵지만 감수하고 살아야지 그걸 자꾸 생각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포와 문화재에 대해 이것저것 문제를 삼다 보면 ‘저 사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식의 핀잔을 많이 듣는다. 내 주머니 채우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인데 좋게 봐줬으면 한다. 좋은 환경을 잘 유지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재산은 자연과 문화재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우포늪 지킴이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지만,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글= 김호철 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 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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