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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자린고비(자(王+此)吝考비(女+比))- 지독한 구두쇠

  • 기사입력 : 2012-06-20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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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가 미덕이다"라며 돈 쓰기를 장려하던 미국과 유럽에서 경제가 다시 어렵게 되어 전세계에 다시 경제위기가 닥쳐올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근검절약(勤儉節約)하는 정신을 다시 고취해야 할 때가 왔다.

    흔히 지나칠 정도로 돈을 안 쓰고 아끼는 사람을 구두쇠, 꼼쟁이, 자린고비 등으로 부르는데, 그 가운데서 자린고비라는 말은 유래가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충청도 충주(忠州)에 고비(高蜚)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지독하게 아껴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어떤 사람이 찾아가서 부자 되는 비결을 물었다. 고비가 비결을 가르쳐 줄 테니까 따라오라고 했다. 산골짝 절벽 위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에 큰 소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그 가지 끝에 매달리라고 했다. 비결을 가르쳐 준다기에 나뭇가지에 두 손을 잡고 메달렸다. 그러자 고비가 한쪽 손을 놓으라고 했다. 그 사람은 한 손을 놓았다. 나머지 한 쪽 손도 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면 절벽에 떨어져 죽소!"라고 소리쳤다. 떨어져 죽지 않으려고 손을 꽉 잡았다. 그때 고비가, "재산을 모으려면 지금 손으로 나무를 잡고 있듯이, 재물을 꽉 잡고 있어야 하오. 그것이 비결이요"라고 말했다.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나서, 재산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그런데 후세로 오면서 백성들의 익살스런 지혜가 모여서 '자린고비'라는 지독한 구두쇠 형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린고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부모 제사 때 지방(紙榜) 쓰는 데 드는 종이도 아까워서 한 번 쓴 지방에 기름을 먹여 계속 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기름에 담그는 것을 '절인다'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별명이 '절인 고비'였는데, 이것이 변해서 '자린고비'가 된 것이다. 일설에는 사람이 워낙 짜서 소금에 절인 것 같다고 해서 '자린고비'가 되었다고 한다.

    각종 한한사전(漢韓辭典)에는 이 단어가 안 올라 있는데, 뜻밖에 국어사전에는 한자로 '자린고비(자(王+此) 吝考 비(女+比))'라고 한자를 달아 놓았다.

    그러나 어느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누가 '자린고비' 네 글자가 고사성어(故事成語) 같으니까, 한자로 비슷하게 뜻을 맞추어 넣은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고(考)' 어머님이 '비(女+比)'이다. '자(王+此)'는 '옥에 티', '허물' 등의 뜻이 있고, '린(吝)'은 '더럽게 아낀다'는 뜻이 있다. 한자 뜻을 가지고 해석하면, '허물이 될 정도로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에까지 아끼는 사람'이 된다.

    후대로 오면서 점점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태지게 되었다.

    장에 가서 굴비를 한 마리 사와서 소금단지에 넣어 잔뜩 짜게 만들어 천장에 달아매 놓고, 식구들이 밥 한 술 먹고 한번 쳐다보게 했다고 한다. 아들이 두 번 쳐다보자 "이놈아! 밤에 물을 얼마나 켜려고 그래?"라고 호통을 쳤다. 부채가 닳는다고 부채를 편 채 얼굴을 흔들었고, 짚신은 아예 바닥이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흉년이 들었을 때 자기 곡식을 풀어 굶어죽는 사람을 살리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충북 음성군(陰城郡)에서는 현종(顯宗) 때의 실존인물인 조륵(趙 王+力)이 실제 자린고비라 하여 비석도 세우고, 자린고비상을 제정하여 저축 많이 하는 사람에게 해마다 상을 주고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좋은 일에 쓰는 것은 크게 장려할 일이다.
    [*. 王+此 : 옥티 자. *. 吝 : 아낄 린. *. 考 : 죽은 아버지 고. *. 女+比 : 죽은 어머니 비]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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