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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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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수사입성(修辭立誠)- 말을 다듬어서 정성을 이룬다

  • 기사입력 : 2012-06-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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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가 예닐곱 살 먹었을 적에 필자의 고향인 함안(咸安) 지역의 국회의원은 조경규(趙瓊奎)라는 분이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분이 우리 동네 자기 일가들의 재실(齋室)에서 자고 간다는 소문이 전해져,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먼 마을에서 소문을 들은 사람들까지 몰려와 국회의원 구경 한번 하겠다고 길가에 서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당히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도 안 와서 필자는 집으로 와서 그냥 잤는데,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젯밤에 와서 자고 아침 일찍 떠났다는 것이었다. 허전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 국회의원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봤는데, 그 당시는 국회의원 자신들도 언행을 삼가며 점잖게 처신했던 것이다.

    오늘날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존경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 이외에도 다른 자리가 많이 생겨났고, 또 일반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진 것도 원인이겠지만, 근본적으로 국회의원 자신이 언행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국회의원들의 처신이 저속해졌는데, 특히 말을 함부로 하고 아무데서나 욕설을 한다.

    국회의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장관, 판사, 검사, 신부, 스님, 대학교수, 기업 총수 등등 모두가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현직 판사가 대통령을 두고 ‘개××’라고 할 정도이니, 욕설의 심각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 연속극 등에는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다가 머리채를 잡고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사회 전체가 점점 무질서해지고 저속해져 간다는 증거다.

    요즈음 중고등학교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욕설을 일삼는다. 교사한테 욕설을 하며 달려드는 학생도 없지 않다. 학교교육이 무너진다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개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은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말이나 행동은 그렇게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고 그 사람의 심리상태의 반영인 것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주역(周易)’에 ‘말을 닦아서 그 정성을 세운다(修辭立其誠)’라는 말이 있다. 말을 잘 갈고 다듬어서 자신의 정성을 나타내어 자기가 뜻한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같은 민사소송사건인데도 어떤 변호사에게 맡기면 이기는데, 어떤 변호사에게 맡기면 지는 경우가 있다. 변호사가 이리저리 궁리를 거듭해서 변론(辯論)을 쓰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연애하는 젊은이들은 몇 번이고 연애편지를 고쳐 쓴다. 이런 것이 다 ‘말을 닦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말은 사람과 동물을 차이 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인류의 문화가 축적되어 발전하게 한 원동력이다. 하늘이 사람에게만 부여한 이 좋은 말을 함부로 써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등을 개최한 세계적으로 이름난 국가다. 개인적으로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학자, 경제인, 운동선수 등이 적지 않다. 이런 경제적 수준에 맞춰 말이나 처신도 격(格)을 높여야 하겠다.

    * 修 : 닦을 수. * 辭 : 말씀 사.

    * 立 : 세울 립. * 誠 : 정성 성.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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