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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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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기세도명(欺世盜名)-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훔친다

  • 기사입력 : 2012-05-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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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상 고상하고 유명한 사람 가운데서 알고 보면 좋지 못한 짓을 한 경우가 적지 않다. <다경(茶經)>을 지어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당(唐)나라 육우(陸羽)라는 사람은 자기가 부리는 하인이 차를 달일 물을 잘못 끓였다 하여 칼로 목을 베었다 한다.

    명(明)나라 말기의 대서예가이자 화가인 동기창(董其昌)은, 왕희지(王羲之) 이후 가장 뛰어난 서예가로 추앙받는다. 그는 오늘날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상서(尙書) 벼슬을 지냈는데, 그가 관직을 이용해서 축적한 토지는 몇 개 고을의 면적보다 더 넓었다. 그런데도 그는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았고, 또 남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그의 서예나 그림의 고상한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처신을 하였다.

    조선 중기 유명한 성리학자 가운데서 주색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퇴계(退溪)선생의 여러 차례 훈계에도 태도를 바꾸지 못하다가 결국 비명횡사(非命橫死)하였다. 민족사관(民族史觀)이니, 민족문학 등 민족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국문학자가, 틈만 나면 자기 집에 미군장교를 불러 파티를 열어 그들의 환심을 사서 그 아우와 자식들을 미국 유학 보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지도층 인사가 많이 있어, 국민들은 실망을 금하지 못 하고 있다. 늘 수행(修行)에 정진(精進)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던 불교 승려들이 호텔에서 술을 마시면서 억대의 도박판을 벌이다 다른 승려가 설치해 놓은 비밀카메라에 촬영이 되어 그 비행이 세상에 폭로됐다.

    1998년 종정(宗正) 월하(月下) 스님 등이 중심이 되어 불교계의 정화운동을 진행하려고 계획한 적이 있었다. 부인을 숨겨둔 승려, 재산을 숨겨둔 승려, 폭력을 일삼는 승려, 마약을 하는 승려 등을 축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정화운동을 추진한 종정 월하 스님 등은 내쫓기고 말았다. 불교계가 정화되기는커녕, 각종 부패가 더 깊이 뿌리를 박게 되었다. 승려들 자신들이 파벌을 떠나서 불교계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로 정화를 하지 않으면, 더 썩게 될 것이다.

    인생의 고해(苦海)에서 시달리다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고 쌀 몇 되 이고 절간의 스님을 찾아오는 할머니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모든 스님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

    비단 불교계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불교계의 비리가 폭로된 것은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이다. 종교계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이번 불교계의 비리 노출을, 학계, 예술계, 언론계 등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자기보다 조금 못 한 사람들을 속여서 이름을 얻고 재산을 얻고 욕망을 채운다면, 도둑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 欺 : 속일 기. * 世 : 세상 세. * 盜 : 도둑 도. * 名 : 이름 명.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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