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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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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천추백련(千錘백화점鍊)- 천 번 망치로 두드리고 백 번 정련하다. 반복해서 계속 단련하다

  • 기사입력 : 2012-04-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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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나라 송나라 때의 유명한 문장가 여덟 명을 꼽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라고 한다. 팔대가는 명나라 초기에 이르러서 주우(朱佑)가 당나라 송나라의 대표적인 문장가 여덟 명의 글을 선정하여 ‘팔선생집(八先生集)’을 편찬하면서 비롯되었다. 그 뒤 명나라 중기에 모곤(茅坤)이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라는 책을 편찬하면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당송팔대가는 중국 당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 왕안석(王安石),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증공(曾鞏)이다.

    이들은 지나친 수식을 배제하고 내용이 알찬 평이한 글을 지었다. 이런 경향을 만들어낸 사람은 당나라의 한유다. 그는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전개하여, 그 이전에 유행하던 변려문(騈儷文)이라는 지나친 수식과 대구(對句)를 강조하는 글을 배제하고 평이하면서도 내용 있는 글을 지을 것을 주장하여 이를 문단에 확산시켜 나갔다.

    송나라 구양수는 한유의 이런 경향을 이어받아 자신의 문장을 확립시켜 대문장가가 되었고, 송나라의 나머지 다섯 사람은 모두 구양수의 제자이거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구양수는 송나라의 문장을 일으킨 사람으로 대문학가이자 유명한 역사가이다. 그는 글을 한 편 지으면 바로 내놓지 않고, 자기가 공부하는 방의 출입문 위에 붙여두고 나가면서 읽어보고는 붉은 붓으로 고치고 들어오면서 또 이렇게 고쳤다. 얼마 지나면 전부가 붉은 글씨만 남아 다시 정서하여 붙여 그렇게 고쳤다. 얼마 지나고 나면 또 붉은 글씨만 남게 되어 또다시 정서하여 붙여 이렇게 고쳤다 한다. 얼마나 많이 고쳤는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제자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송나라 제일의 문장가라 하는데, 한문을 배우는 사람으로 그의 ‘적벽부(赤壁賦)’를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기로는 적벽부는 단숨에 지은 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치느라 다시 쓴 종이가 큰 독에 가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매일매일 적은 일기를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돌아와서 2년 동안 계속 고쳐서 내놓은 것이다.

    필자는 원래 글재주가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성적이 괜찮으니까 으레 다른 학생들보다 글을 잘 지을 것으로 생각하여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에 몇 번 대표로 내보냈지만, 단 한 번도 입선한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교지 등에 글 한편 실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또 마음에 드는 글은 수백 번씩 반복해서 보고, 좋다고 여겨지는 글은 따로 공책에 적어 모아 읽고 또 읽고 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매일 한문으로 일기를 써 왔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덧 글을 좀 쓰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쓴 원고가 10만 장에 접근해 간다.

    좋은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고 또 달구어 수없이 정련을 하듯이, 사람이 문장이나 시 등 어떤 학문이나 기술을 익히는 데는 반복해서 연습하는 길이 최선의 길이다.

    *千 : 일천 천. *錘(=鎚) : 망치 추. 두드리다. *百 : 일백 백. *鍊(=煉) : 단련할 련.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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