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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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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벽성난제(癖性難除)- 고질이 된 습성은 없애기 어렵다

  • 기사입력 : 2012-02-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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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어느 날 연재하고 있는 ‘한자로 보는 세상’ 원고를 신문사에 보내려고 하는데 컴퓨터 인터넷이 고장났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꼭 보내야 하기에, 월요일 아침 9시쯤에 집 인근에 있는 PC방을 찾아 들어가 원고를 보냈다. 필자는 PC방이라는 곳을 난생처음 들어가 봤다. 들어서는 순간 놀랐다. 월요일 아침이라 사람이 있겠나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40여 대의 컴퓨터가 설치돼 있는 큰 방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그 청소년들은 어떤 애들일까 궁금했다. 나이가 어려 대입 재수생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 안 가는 청소년 같았다.

    요즈음 컴퓨터 게임에 빠져 문제가 된 청소년들이 많다. 소위 말하는 ‘게임중독’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중독 정도에 이르면, 본인이 끊겠다고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는,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고 몸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 아무리 다짐해도 몸이 습관적으로 하던 대로 하도록 마음을 유도한다. 흔히 이런 정도의 중독에 이른 것을 ‘인이 배긴다’라고 하는데, 이때의 ‘인’은 한자의 ‘은()’자에서 온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들어와 숨은 병’이라는 뜻이다. 또 고질이 된 습관을 ‘벽(癖)’이라고 하는데, ‘벽’은 한쪽으로 치우친[僻] 병이라는 뜻이다.‘녁()’이라는 부수가 붙으면 ‘병(病)’이라는 뜻이 된다.

    ‘도벽(盜癖)’이라 하면 훔치는 고질적인 버릇, ‘도벽(賭癖)’이라고 하면 ‘도박하려고 하는 고질적인 버릇’이 된다. 마약, 음주, 흡연 등에 벽 (癖)이 붙으면, 자신의 의지로 끊기 어렵다.

    중독되는 것은 지위나 학식 정도와 전혀 상관없다.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황후인 완용 (婉容)이라는 여인은 아편에 중독돼 폐인이 됐다. 청나라 해군 장성 출신으로 영국 유학 후 철학박사가 돼 돌아와 북경대학 총장을 지냈던 엄복 (嚴復)이라는 유명한 학자도 아편중독으로 말년이 비참했다. 북경대학의 세계적인 논리학자 김악림(金岳霖) 교수는 자기가 처음 보는 순간 반해 버린 여인에게 구혼을 했는데, 그 여인이 이미 약혼한 신분이라는 말을 듣고는 이웃에라도 좀 살게 해달라고 간청해 옆집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일생을 처량하게 마쳤다. 이렇게 중독의 마력은 가공할 정도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많아지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부모들에게 있다. 자녀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집을 지키며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상태를 파악하면 게임중독을 막을 수 있다. 어린애가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 이를 달래주는 것으로 컴퓨터 게임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서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이 되고,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어렵다. 설령 헤어난다 해도 그 사이 이미 따라갈 수 없게 되어버린 학업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죄스러워 괴롭다. 그 큰 괴로움을 우선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컴퓨터 게임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미 중독이 된 청소년들은 곪은 곳을 도려내듯 단호한 결심을 하고 중독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선도가 필요하다. 좀 더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주 대화를 해, 컴퓨터 게임에 의존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癖 : 버릇 벽. *性 : 성품 성.

    *難 : 어려울 난. *除 : 제거할 제.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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