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25일 (토)
전체메뉴

(416) 서막여존(書莫如尊)- 편지는 존경하는 것만한 것이 없다. 편지를 쓸 때는 가장 존경하는 말투로 써야 한다.

  • 기사입력 : 2012-01-31 01:00:00
  •   


  • 아득한 옛날에는 말은 있어도 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가 없었다. 그러니 말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당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내용이 전달될 수가 없었다.

    그 뒤 각 민족마다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벗어나게 되어, 말한 내용을 글로 적어 시간적으로 나중에까지 남길 수 있었고, 공간적으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까지 보낼 수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오랜 기간 동안 인류가 발명한 여러 가지 지혜와 기술이 축적돼 종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는 문자가 큰 작용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화를 교류하는 데 쓰인 문자로 전달하는 글을 ‘편지(便紙 또는 片紙)’라고 했다. ‘인편(人便)에 부치는 종이에 적은 글’, 또는 ‘간단한 종이 조각에 적은 글’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이 편지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한자어이고, 중국에는 이런 말이 아예 없다. 옛날에는 편지를 ‘서신(書信)’, ‘서간(書簡)’, ‘서한(書翰)’, ‘서찰(書札)’, ‘서독(書牘)’, ‘서함(書函)’, ‘서계(書啓)’ 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편지의 내용은 단순한 안부편지에서부터 학문의 토론, 정보의 교환 등 다양했다. 옛날에는 교통이 나빴기 때문에 편지가 통신의 수단으로서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안동 도산에 거주하는 퇴계 선생께서 전라도 광주에 거주하는 제자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하면, 안동에서 광주에 가는 사람이 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먼저 서울로 가는 사람에게 보내어 광주와 연관이 있는 사람의 집에 맡겨 부탁한다. 그러다가 그 집에서 광주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광주로 편지를 가지고 가서 기대승에게 전달했다. 그러니 빨라도 석 달, 늦으면 몇 년도 걸렸다. 그래서 옛날에는 편지가 정말 반갑고 귀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평생 만나는 경우는 몇 번 안 되고 대부분 편지를 통해서 질문하고 답변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의 문집에는 편지가 가장 많다. 대표적인 학자인 주자는 문집이 모두 200권인데, 그 3분의 2가 편지다. 우리나라의 대학자 퇴계 선생의 문집도 3분의 2가 편지다. 편지 속에 주자나 퇴계의 학문과 사상이 다 들어 있다. 다른 대부분의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으로 질문만 하는 편지인 ‘문목(問目)’이라는 것도 있다. 편지를 살펴보면, 그 학자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은 팩스, 이메일, 휴대폰, 스마트폰 등으로 정보를 교환하지, 편지로 정보를 교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정보를 교환한다 해도, 옛날부터 지켜 왔던 편지의 예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 남의 메일이나 문자를 받았으면 반드시 간단하게라도 답장을 해야 한다. 둘째, 첫머리 인사, 마지막 인사가 있어야 한다. 셋째 손위 사람에게 언어예절을 지켜야 한다. 상스러운 말이나 비어(卑語), 유행어 등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넷째 아무리 바빠도 정중한 자세를 유지해야지 장난스럽게 써서는 안 된다.

    *書 : 글 서. 편지 서. *莫 : 아닐 막. *如 : 같을 여. *尊 : 높을 존.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