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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하동 칠불사

깊은 지리산 깊은 산사가 품은 전설과 전통
김수로왕 일곱왕자 성불한 곳으로 알려져
세계건축사에 기록된 온돌방인 ‘아자방’은

  • 기사입력 : 2011-12-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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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 김수로왕이 일곱 왕자가 성불한 것을 기념해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올해 단풍 절정기 때의 칠불사 전경.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초겨울의 한적한 오후. 바쁜 일상에서 탈출해 조용한 산사를 찾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하동이 제격이다.

    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하구 강변의 하늘거리는 갈대밭을 지나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따라 국도 19번을 타고 구례 방향으로 올라가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화개장터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쌍계사 방향으로 십리벚꽃길을 따라 20여 분쯤 올라가다 보면 화개면 범왕리의 칠불사(七佛寺) 팻말을 만날 수 있다.

    지리산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한 칠불사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곳으로 유명한 고찰이다.

    1세기경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따라와 칠불사에서 동시 성불한 것을 기념해 김수로왕이 국력으로 창간한 가야불교의 발상지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 화생(化生)했으며, 남해바다를 통해 가락국에 온 인도 황하상류의 태양왕조인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해 외숙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가야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칠불사가 됐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긍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이다.

    칠불사 어귀에는 영지(影池)가 있는데 이 연못에는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어 사람들을 더욱 숙연하게 한다.

    출가한 일곱 왕자가 보고 싶어 절을 찾은 김수로왕 부부가 왕자들을 보려 하자 장유화상이 왕자들은 이미 출가해 수도 정진하는 몸이라 상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꼭 보고 싶다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속을 들여다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곳에 연못을 파고 물속을 들여다보니 보름날 밤 과연 일곱 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나 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 그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됐다.

    보름달처럼 둥그런 연지에는 2000년 전의 슬픈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하염없이 떨어진 낙엽 사이로 비단잉어떼가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칠불사 주변에는 영지 외에도 김수로왕과 연관된 전설이 여럿 스며 있다. 칠불사 인근 마을이 범왕리인데 범왕(梵王)이라는 명칭은 김수로왕이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임시 궁궐을 짓고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또 정금리 대비마을(大妃洞)은 허황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칠불사 아자방(亞字房)의 방안 네 귀퉁이에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이다. 축조 당시 한 번 불을 지피면 석 달 열흘, 즉 100일간 온기가 가시지 않는 신비한 온돌방이라 해서 세계건축사에 기록됐으며, 경남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아자방과 운상선원에서는 고려시대의 정명선사, 조선시대의 서산대사(1520∼1604), 부휴대사(1543∼1615), 초의선사(1786∼1866) 이외에도 백암, 인허, 월송선사 등 선승들이 주석하며 수선안거했다고 한다. 근·현대에는 용성선사, 금오선사, 서암선사 등 큰스님들이 수선안거했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은 ‘옥룡자결’에 의하면 지리산 칠불사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으로 제일의 양택이라고 했다. 임진란에 퇴락한 가람을 서산대사와 부휴대사가 중수했다고 하며, 그 후 1800년에 큰불이 나 대은율사와 금담율사에 의해 모두 복구됐다.

    그러다가 6·25 전란으로 1951년 1월경 다시 불에 타 27년간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제월통광(霽月通光) 스님이 1978년부터 15년여에 걸쳐 복원 중창했으며, 이 외에도 선다원, 사적비, 다신탑비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리산 화개골은 아담한 숙박업소와 펜션, 그리고 민박집이 곳곳에 있어 단체는 물론 가족과 연인들이 하룻밤 묵기에 더없이 좋다.

    김윤관기자 kimyk@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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