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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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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주차명지(主次明知)-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분명히 안다

  • 기사입력 : 2011-10-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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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중반 중국 북경에서 1년 반 거주하다가 돌아왔는데, 돌아오기 한 달쯤 전에 한국에서 온 교수에게 들으니,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직접 가거나, 우편물로 부치지 않아도 서울 등 멀리 있는 사람에게 원고도 보낼 수 있고,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 등 새로운 소식도 책을 통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도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거나 반갑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귀국해서 막상 접해 보니, 그리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리고 우편물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료 검색, 정리 등에 편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끔 궁금한 것도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다.

    필자가 1984년경에 ‘문선(文選)의 조선(朝鮮) 전래와 그 영향’이라는 논문을 썼는데, 문선이라는 책은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양나라 때까지의 대표적인 시와 문장을 뽑아 모은 문학선집이다.

    평소에 알고 있는 지식과, 색인이 가능한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동국문헌비고 등 몇몇 참고서적을 고찰해 논문을 완성했다. 결론은, “문선은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많이 읽히다가, 조선 초기 ‘고문진보(古文眞寶)’가 널리 유행되어 읽히는 바람에 문선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었다. 이 논문은 그 뒤 중국과 일본에서도 번역돼 소개됐다.

    그런데 20여 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문선에 대해서 발표한 논문은 어떤 것이 나왔는지 거의 다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그 사이에 한국문집총간이라는 것이 출판되고, 인터넷에 공개돼 있는데, 우리 선현들의 문집 대부분을 인터넷으로 그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문선에 관한 어마어마한 자료를 다 모을 수가 있었다. 자료 중에 중요한 것만 모아도 엄청났다. 20년 전에는 1년 가까이 예의주시해 자료를 모아도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의 논문을 다 채우지 못했다.

    20여 년 전보다 훨씬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었다. 1984년 발표해서 다른 나라에까지 소개되었던 논문의 결론은, 부끄럽지만 사실과 전혀 맞지 않아 오늘날 보면 가치 없는 논문이 되고 말았다. “고문진보가 유행된 뒤 문선이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고, 문선은 조선 말기까지도 계속 많이 읽혔다.” 옛날의 논문과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많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인터넷에, 요즈음 필자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호기심이 상당히 있는 필자가 자료를 찾을 필요가 있어서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밤샘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거나, 잠을 자지 못해 다음 날 일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 정신이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혹이 심하지만, 요즈음은 웬만해서는 인터넷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사람의 병은, 자기 밭은 버려놓고 남의 밭 매는 데 있다[人病, 舍其田, 而芸人之田]”고 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 남의 일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건은 판단, 선택의 문제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명확히 구분해 올바른 쪽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主 : 주인 주. *次 : 다음 차. *明 : 밝을 명. *知 : 알 지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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