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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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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홍익인간(弘益人間)- 사람 사는 세상을 크게 이롭게 한다

  • 기사입력 : 2011-10-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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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의 역사 자료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다.

    삼국사기는 1145년 김부식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지었는데, 후삼국 말기까지의 1000년에 걸친 우리나라 역사를 정리한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이다.

    삼국유사는 1281년 일연 스님이 지은 것으로, 본래 역사서의 체재를 갖춘 책은 아니고, 주로 삼국의 불교관계 설화를 모은 책인데, 당시 상황을 알기 위해서 역사적 기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첫머리에 왕력(王曆)이라는 삼국의 연대기를 얹어놓았다.

    어떤 기록이든 50년만 지나면 역사학자들이 역사기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역사서가 되어 있다. 만약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문학사는 너무나 초라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개국시조로 받드는 단군과, 거기서 나온 단기(檀紀), 개천절(開天節) 등도 모두 삼국유사 때문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보다 136년 먼저 지어진 삼국사기에서는 단군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귀중한 삼국유사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 땅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성리학만 숭상한 유학자들에게 불교 이야기 등 허황하게 보이는 내용만 실려 있는 쓸데없는 책으로 생각되어 관심을 안 가졌던 것이다. 일본에 유학했던 최남선이 1904년에 이름만 들어 왔던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1927년에 일본에서 역수입해서 ‘계명(啓明)’ 제18호에 전문을 다 실어 국내에 소개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연구가 활발하여 국내외에서 6000여 편의 논문이 나왔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단군의 건국신화가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옛날 하늘 나라의 환인(桓因)의 여러 아들 가운데 환웅(桓雄)이 있었는데, 자주 하늘 아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제하고자 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군데 높은 곳을 내려다보니, 태백산(太伯山)이 ‘사람 사는 세상을 크게 유익하게 할[弘益人間] 수 있는 곳이었다.(하략)”

    어떤 지역으로 옮겨가 지배세력이 나라를 세우게 되면, ‘하늘의 아들’이라고 해야 통치에 힘을 얻기 때문에 건국신화는 어떤 형태로든 하늘과 연관을 시키는 공통점이 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짓던 고려 후기의 상황은 참으로 암담했다. 1175년 정중부의 난 이후 무신정권이 계속되다가 몽골군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다. 고려왕실은 강화도로 피란 가 백성들은 몽골군의 말발굽 아래 장기적으로 짓밟히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민족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아무런 자긍심도 느끼지 못하는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이때 일연스님은 우리 민족이 그렇게 하찮은 민족이 아니고, 신성한 하늘의 아들이 세운 우수한 문화민족임을 밝히기 위해서 단군신화를 채록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짜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 개천절이 10월 3일인 것은, 본래 대종교에서 1900년에 음력으로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인데, 우리 민족은 음력 10월에 추수를 마치고 나서 모여서 하늘에 감사하는 제사를 올렸기 때문에 10월로 정했고, 3이 길(吉)한 숫자라 하여 3일로 정한 것이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양력으로 바꾸었다.

    * 弘 : 클 홍. * 益 : 더할 익.

    * 人 : 사람 인. * 間 : 사이 간.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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