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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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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이향배정(離鄕背井)- 고향을 떠나고 우물을 등지다

  • 기사입력 : 2011-09-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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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세상이 변화가 심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변화 가운데서 한 가지는, 생활의 필요에 따라서 사는 곳을 수시로 옮겨다닌다는 것이다. 상당히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친구라도 몇 년 연락 안 한 사이에 주소도 바뀌고 전화번호도 바뀌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농촌에서 이사가는 일이란 아주 드물었다. 오래 산 집안은 한 동네에서 400년, 500년을 살아왔고, 짧은 집안도 보통 백 년 이상 살아온 경우가 많았다. 간혹 공무원이 되거나 회사에 취직하여 객지에 나간 사람이 있어 이사를 가지만, 이사를 갔다 해도 자기 집이나 토지를 큰집이나 가까운 친척집에 맡겨두고 도시나 다른 고을에 가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고향 마을에 와서 집을 돌보고, 늘 고향 사람들을 접하고 고향의 소식을 잘 알고 지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도시에 회사가 많이 생겨 일자리가 늘어나자, 토지에만 매달려 가난을 면치 못하던 많은 농촌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몰리게 되었다. 그야말로 ‘고향을 떠나고 먹던 우물물을 등지는[離鄕背井]’ 일이 시작되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은 명절 등 특별한 날이 되면, 고향이나 고향에서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몇 배로 더 생각난다. 옛날에는 명절이 되어 고향에 가면 일가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던 사람들도 고향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렵게 살아도 옛날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던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고향에 간혹 가도 필자가 알던 사람은 얼마 없고, 필자가 떠난 뒤에 태어난 젊은 사람들은 필자를 모른다. 고향 동네가 꼭 남의 동네 같은 느낌이 든다.

    당(唐)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회향우서(回鄕偶書)’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少小離家老大回], 고향 사람들 말씨는 변함 없건만 내 귀밑머리는 새었네[鄕音無改 毛衰]. 고향 애들이 나를 보고서 알아보지 못하고서[兒童相見不相識], ‘손님 어디서 오셨소?’라고 웃으며 묻네[笑問客從何處來].”

    오래간만에 고향에 가 보면 고향의 산과 들이나 시내는 옛날 그대로이지만, 환경도 많이 바뀌고 사는 사람들도 바뀌어 “나는 고향을 잊은 적이 없는데, 고향은 이렇게 바뀔 수 있나?”라는 감개(感慨)를 금할 수가 없다. 내 고향에 왔건만, 고향 동네의 어린이들은 나를 몰라보고 “손님 어디서 오셨소?”라고 묻는 대수롭잖은 질문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지금부터는 자주 와야지”라고 마음으로 다짐을 하지만, 한번 떠나고 나면, 다음번에도 마찬가지로 벼르고 벼르다 또 몇 년 만에 가게 된다. 그러다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친척들 다 떠나고 나면 갈 일도 적어지고 하여 고향을 점점 멀리하게 된다. 자식 세대에 가면, “우리 아버지 고향이 어디라 하던데”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생활이 바쁘겠지만, 가족들 데리고 어릴 적 자신의 영혼의 안식처인 고향을 자주 찾아가 어릴 적 이야기, 집안 이야기, 조상 이야기 등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뿌리를 찾고 가문을 잇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는지.

    * 離 : 떠날 리. * 鄕 : 고을 향.

    * 背 : 등질 배. 등 배. * 井 : 우물 정.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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