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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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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으로 본 산단과 여성 노동의 의미

‘고깔과 진달래’展 16일까지 창원 동남아트센터
작가 5인 참여해 사진·영상·회화 19점 선봬
마산수출자유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공동작품도

  • 기사입력 : 2024-06-09 21: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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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 자본과 수많은 노동이 집약된 산업단지, 여성 노동자는 가장 아래에 있었다. 해고와 차별의 불안 속에서 언제나 부동(不動)을 위해 외쳤던 아우성을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것을 ‘쾌활함’이라고 얘기한다.

    창원시 성산구 동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고깔과 진달래’ 전시 전경.
    창원시 성산구 동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고깔과 진달래’ 전시 전경.

    ◇창원과 제조산업, 그리고 여성 노동= 동남아트센터 1층 전시홀에서 오는 16일까지 진행되는 ‘고깔과 진달래’는 마산과 창원을 대표하는 산업단지와 여성 노동의 의미, 관계성을 되짚고 있다. 참여작가인 박준우, 김동겸, 조영주, 현다혜, 하민지의 사진·영상·회화 19점과 마산수출자유지역의 여성노동자들이 공동 제작한 작품 등이 전시됐다.

    전시는 박준우 작가의 회화와 김동겸 작가의 사진과 영상으로 거대 산업을 조망하며 시작된다. 창원에서 활동하며 주변의 풍경과 사물을 사생하는 박 작가는 1979년 창원 공업 기지의 착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정밀공업진흥의탑(1979)’을 그린 두 점의 회화와, 직접 창원 제조산업의 노동자로 근무했던 당시를 드로잉하고 사색했던 책자를 전시했다. 작품은 다른 정치적, 사회적 의견을 배제하고서 창원 산업과 노동의 알맹이를 직시한다. 김 작가의 작품은 지난해 마산자유무역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자유무역지역의 산업 풍경을 촬영한 작업물이다. 사람, 사회와 동떨어진 하나의 인공섬 같은 현장을 포착한다.

    조영주, 현다혜, 하민지, 유혜주 작가는 영상과 사진·회화를 통해 여성 노동의 지위와 가치를 바라본다. 조영주, 유혜주 작가는 영상으로 ‘그림자 노동’(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에 머무는 여성 노동의 현실을 풀어낸다. 가사노동을 했던 조 작가는 영상 작품 ‘불완전한 생활’에 자신의 일상을 담았다. 가사노동의 단면과 경험에서 나오는 감정의 편린이 작품에 드러난다. 유 작가는 절에서 무급 노동을 하는 보살의 이야기를 ‘사랑의 노동’이라 가리켰다. 이들은 부드럽게 속삭인다. ‘그곳에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고.

    ◇그곳에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전시장 바닥에는 창원 제조산업의 역사가 연도별로 이어진다. 전시 말미에 역사는 현재로 종결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는 다시 과거가 있다. TC전자, 한국웨스트전기, 한국수미다전기.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던 기업이다. 이곳에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갑작스러운 해고와 직장폐쇄를 경험했다. 그렇기에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이 여정을 ‘꽃피는 삼월에 우리는 일하고 싶다’ 등의 민중미술 작품으로 그려냈다. 전시장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거대한 자본이 군림하는 제조산업 아래 겪었던 부조리의 역사를 정리한 자료와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그린 민중미술 작품이 걸렸다. 작품은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 여성평등공동체 숨이 제공했다.

    전시명인 ‘고깔과 진달래’는 여성 노동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상징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선영 공간 힘 큐레이터는 한국수미다전기 집단 해고 사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첫사랑-1989, 수미다의 기억’(감독 박정숙)에서 영감을 얻었다.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한 여성 노동자들은 뙤약볕 아래 고깔모자를 쓰고 거리에 나섰다. 울고 고함치다가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여전히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노동을 해도 진달래가 핀 무학산에 올라 웃음을 터뜨린다. 김 큐레이터는 이를 ‘여성 노동자의 쾌활함’으로 얘기했다. ‘쾌활함’은 불안정함 속 안정을 되찾고자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관성이다. 조 작가의 영상 작품에 한 문장이 흐른다.

    “쾌활하다는 것은 위험과 한계, 불완전성을 존중하면서도 여전히 나 자신과 내 주변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가능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글·사진=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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