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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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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이후보 사퇴와 민주당 경선

  • 기사입력 : 2002-04-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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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仁濟후보의 전격적인 사퇴로 인해 민주당 대선후보가 사실상 盧武鉉후
    보로 확정된 것이나 다름 없게 되자 ‘김 빠진 맥주’처럼 경선 열기가 급
    속도로 식어가고 있다. 두 사람간에 펼쳐진 열띤 공방은 마치 창칼과 방패
    로써 자웅을 겨루는 검객의 혈투처럼 흥미진진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대결을 보기 위해 주말이면 여행도 포기하고 거실 소파
    에 눌러앉아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으리라고 본다. 그렇
    지만 이제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선 이벤트’가 아니라 ‘맥
    빠진 게임’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버렸다. 盧후보와 鄭
    東泳후보 2인만이 남게 된 경선은 아무래도 호적수끼리 벌이는 ‘빅 이벤
    트’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에 자칫 鄭후보까지 중도하차해
    버린다면 한 마디로 민주당 경선의 모양새는 아주 우습게 돼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鄭후보가 사퇴할까봐 민주당 지도부는 크게 신경쓰일 것이다. 물
    론 그는 끝까지 경선을 치를 것이라고 자신의 각오를 밝힌 바 있다.

    당초 대선후보 경선 계획을 세웠을 때에는 이처럼 국민적인 큰 반향을 불
    러일으키게 될 것이라고는 민주당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러나 첫 경선 진행때부터 예측을 뒤엎고 국민들의 관심을 꽉 잡아 버렀다.
    경선 지역이 바뀔 때마다 후보들의 득표 서열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경선
    스타트 라인에서 함께 출발한 주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중도에서
    트랙 밖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열기가 조금씩 식어들기 시작했
    다. 그래도 호적수인 盧·李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뛰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
    들의 호기심은 일정수준 그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인데, 엊그제 李후보
    가 사퇴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파장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부
    산·경기·서울지역 경선만 남겨둔 상태라지만 이 세 곳의 선거인단수가 전
    체의 절반을 상회하기 때문에 이곳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결전장이요, 당락
    을 판가름하는 최후의 승부처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경선이 반드시 긍정적인 면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특히 판세의
    불리함을 실감한 李후보가 ‘盧후보 약점 들춰 내기’로 일관하면서 국민들
    은 실망감을 금치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색깔
    론’을 제기한 李후보측은 심지어 盧후보 장인이 비전향 장기수로 생을 마
    감한 이력까지 들추어 내는 등 치졸스런 공격까지 감행했으며 盧후보는 방
    어하기에 급급했다. 어쩌면 李후보로서는 기우는 세를 만회하기 위한 불가
    피한 선택이요, 최후의 전략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지켜 본 국민들
    의 마음은 그리 즐겁지 못했을 것이란 점은 미루어 짐작 가능한 일이다.

    李고문은 자신의 사퇴선언을 통해서도 밝혔듯이 이제야말로 당을 위해 殺
    身成仁해야 한다. 즉, ‘정권재창출’이란 당의 공동목표를 향하여 총력 매
    진하는데 있어서 그 자신도 사욕을 버리고 힘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것은 당원으로서 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소임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당을
    박차고 나올 궁리만 한다든지 당내에서 분열을 조장하게 되면 국민들의 신
    뢰를 일시에 잃게 된다는 점을 그가 알아 주었으면 싶다. 물론 민주당의
    ‘嫡子’가 아닌 그로서는 경선과정에서 괄세와 설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이다. 대세를 잘못 읽고 오판한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입장
    이 아니라고 본다. 만약 그렇게 했을 때에는 ‘패자의 넋두리’란 비판 이
    외에 달리 평가받을 수 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李후보의 사퇴 및 민주당 경선과 관련하여 일반 국민들은 우
    선 李후보가 당을 위해 白衣從軍하겠다고 한 약속을 철저히 지켜주기를 바
    랄 것이다. 그리고 盧·鄭후보만 달랑 남은 썰렁한 경선판이지만 끝까지 치
    름으로써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시행된 이 ‘이벤트’가 유종의 미를 거두
    는 모습을 보고싶어 할 것이다. 남쪽의 ‘산들바람’에서 시작한 ‘盧
    風’이 경선과정을 거치면서 ‘颱風’으로 변해가고 있다. 비록 경선 분위
    기는 시들하지만 오히려 국민들에게로 다가가는 ‘盧風’의 위력은 더욱 커
    져만 간다. 과연 이 바람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그리고 이 태풍에 무엇이
    쓸려가고 무엇이 남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예단할 수
    없을 것 같다. 목진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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