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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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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부패와의 전쟁

  • 기사입력 : 2000-12-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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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만큼 자극적인 구호와 슬로건이 난무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일
    년 내내 표어와 포스터 공모가 끊일새 없고 관공서나 길거리의 현수막은 계
    몽 문구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성이나 중독이 돼서 보는둥 마는
    둥 한다. 사시사철 캠페인과 구호가 요란하기에 면역이 돼서인지 점점 강
    도 높은 언어가 등장한다. 개혁, 추방, 구조조정에다 전쟁이란 말이 아무렇
    지도 않게 쓰여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말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 또한 사회현상 쯤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
    다.

    얼마 전 대통령이 나서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경제불황, 집단이
    기주의, 정치 부재, 부정부패를 이대로 방치하다간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론이 분열된 채 자신만의 이익추구에 여념이 없는 오늘의 현실
    은 방향 감각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다. 난국을 극복할 의지가 없고, 내
    일을 위한 비전도 없다. 흩어진 민심을 결집시킬 리더십이 없고, 혼돈 혼란
    을 막을 정신적 구심체도 없다.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도덕률과 共同善을
    상실한지 오래다. 공명정대한 경쟁원리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질서의식
    과 공중의식이 사라져 버렸다. 권력이 부패하였기 때문에 공권력을 행사하
    는 데도 신뢰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자도 납세의무를 충실히
    준수하여 공정한 기업윤리와 경쟁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
    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개혁, 구조조정, 부패추방은 오히려 상부층, 권력층, 특권층부터 해야하
    는 것인데도 하부층, 서민층만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가장 먼저 개혁되고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야 할 부도덕한 기득권층이 칼을 쥐고 하부층만을 겨
    냥하고 있는 꼴이다. 이래 저래 개혁과 구조 조정, 부패 추방은 요란한 구
    호와 바람으로 그치고 국민들은 지쳐있는 상태이다. 가장 도덕성과 공정성
    을 요구받는 기관인 청와대 청소원만 돼도 수억원의 돈을 간단히 챙기는 경
    우를 목격하였고, 금융감독원 간부들의 부정과 비리를 보면서 국민들은 이
    제 믿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걸 느꼈다. 진실과 양심을 가지고
    살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을 알았다. 요즘 어머니들은 곧잘 자식에게 『진실
    하고 착해야 한다.』는 말 대신 『그렇게 착해 빠져선 어떻게 사회를 살아
    갈 것인가?』하고 역정을 내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
    와 극단적 이기주의 때문에 「우리」라는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은 증발해
    버렸다.

    오늘의 총체적 난국을 풀기 위해선 효율적이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부정부
    패 척결이 단행돼야 한다.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한낱 구호나 엄포용이 돼
    선 안된다.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살리고 삶에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유
    일한 돌파구, 마지막 생존 수단으로 국민 공감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부정
    부패는 우리 내부를 썩게 하는 가장 무서운 병원균이다. 온 몸에 퍼져 악취
    를 풍기는 곪은 부분을 가차없이 도려내는 수밖에 없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초기엔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강도 높은 사정을 통해 부정부패의 척결
    에 나섰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정부도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사정을 통해
    무엇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건설」에 목표을 두고, 하루 속히 부패방
    지법을 제정하고 이미 선포한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야 한
    다. 한순간 구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정의, 공정, 신뢰가 구
    축될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하는 것이 정착화의 관건이 될 것이다.

    물질만능의 추세에 밀려 정신가치와 도덕률이 퇴색돼선 안된다. 도덕률과
    정신가치야말로 부정 부패를 막는 소금과 빛이다. 共同善으로서 질서의식
    과 공중의식이 뿌리 내려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질서와 공중도덕
    이 지켜지는 사회가 돼야 하고, 그런 사회만이 희망이 있고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 위기와 난국을 극복하려면 「다시 시작
    하자」는 국민 공감대 속에 부패추방을 위한 전쟁을 통해 사회정의와 도덕
    률을 세우는 일에 모두가 나서야 할 것이다.정목일 기획출판국장겸 논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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