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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서이초 불행,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허인수(전 경남교육연수원장)

  • 기사입력 : 2023-08-31 19: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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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교육환경과 제도 전반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폭염 속에서도 서울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5만명 안팎의 교사들이 모여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평범한 교사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이번 불행은 오늘내일하며 우려하던 일이 한순간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 예견된 비극이다. 새벽에 담임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는 읽지 않았다고 모욕을 주는 학부모, 아이를 때린 학부모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하자 담임 교체하라고 몇 날 며칠 동안 학교를 들쑤시는 보호자도 있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표창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인 차량을 몰고 와 소음공해를 퍼붓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맞으면 학교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다. 우리 부모들은 어쩌다 내 아이에 대한 관심만을 요구하게 되었을까. ‘왕의 DNA’ 사례는 소수의 예외적 일탈로 넘겨도 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교육계의 불행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 평균주의에 빠져 한 줄 세우기식 경쟁 만능주의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경고한다. 경쟁에서 이긴 승자만이 독식하던 해묵은 가치관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서이초등학교의 불행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4차산업 혁명기에는 협업 능력이 성공의 열쇠가 되는 세상이다. 최고의 자동차는 과거처럼 유능한 엔지니어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계공학자와 디자이너, IT 전문가가 협업하는 과정의 성과물이다. 일률적·집단적 사고에 의한 평균만이 이상적이며, 개별성에 의한 자질은 오류라는 과거의 환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학부모가 살아온 과거의 삶에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아동학대법을 개정하고,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에 대한 분리 방안을 제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학교 민원 시스템의 체계화를 위한 개선책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공장식 집단주의적 사고를 벗어던지고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내 아이의 상대적 우위만이 유일한 관심사인 교육 풍토가 존재하는 한 불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일을 잘하면 다른 일도 당연히 잘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개개인의 자질을 중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협업하는 교육환경을 만들려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서이초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아이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부터 바꾸어야 한다.

    허인수(전 경남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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