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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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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물-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3-08-02 19: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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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 물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메마르고 척박한 곳을 적셔 땅을 기름지게 하고 생명을 잉태하니 생명의 원천이다. 말없이 산을 품고 하늘을 담는다. 저녁마다 산기슭을 밟고 내려온 그림자의 맨발을 씻겨주고 온종일 서 있는 미루나무의 종아리도 어루만져 준다. 늘 투명 옷을 입고 제 속을 고스란히 남에게 보여주며 모퉁이가 뾰족한 돌덩이나 날 선 유리 조각은 혀로 핥아 두루뭉술하게 한다. 쉼 없이 흐르면서도 헝클어진 물풀의 머리를 빗겨주고 제 살을 찢으며 유영하는 물오리 떼도 나무라지 않는다.

    물은 토란 잎에 내린 이슬이 물방울로 땅바닥에 떨어져 작은 웅덩이가 되고 그 웅덩이가 개천으로 흘러가 강이 된다. 강이 바다로 가면 근육과 뼈대가 있는 파도로 변한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것도 뼈가 생기면 야물고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7월 한 달째 이어진 장마는 집중호우를 동반해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 제방이 무너지고 지하차도가 침수되어 차량과 사람들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산사태가 순식간에 가옥을 덮쳐 마을이 초토화 되었다.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구조원의 목숨까지 앗아 갔다. 졸지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넋을 잃고 거리로 나앉았다.

    엄청난 수군의 급습으로 두 눈 멀쩡히 뜨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다. 당한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당한 사람들의 정부는 소 잃은 외양간을 돌며 가슴을 쳤다. 그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재난현장의 무너진 흙더미 위에서 관계자의 브리핑을 받고 관리된 인상으로 사진을 찍었다.

    당초 지구온난화로 물의 변이가 발생해 변방에서부터 전운이 감돈다는 수신호를 보냈지만, 당국이나 관계자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적으로 변한 물의 급습이 예상되는 곳은 성을 견고하게 높이 쌓고 감시병을 늘렸어야 했다. 적의 출몰이 잦았던 곳일수록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위험이 감지되면 즉각 통로를 통제하고 차단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이번 같은 대형 참사는 막았을 것이고, 천재를 겪으며 인재란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늘어나는 부상자와 사망자 소식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감으로 몰려왔다. 미리 막는 게 가장 좋았지만 그러지 못해 이미 당했으니 이제는 재난 현장을 신속히 파악해 적극적인 수습이 최우선이다.

    정부는 특별 재난 지역을 중심으로 입체적인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우리 국민들도 수재민과 유가족들이 하루 속히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겠다.

    그리고 이제 두 번 다시는 이러한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철저한 점검과 대책을 마련하자.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은 강철이 아니라 한 방울씩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그 물방울을 바가지에 가득 채워 우리는 해갈하지만 물이 근육을 키우고 뼈를 만들면 우리를 통째로 삼킬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유사시를 대비한 방책이 필요하다.

    물이 근육과 뼈를 만들기 전에 미리 막힌 물길을 터주고 좁고 얕은 물길은 깊게 넓혀 주자. 산사태가 우려되는 곳은 방어막을 설치하고 위험에 노출된 민가는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자. 침수가 잦은 지하차도는 원점에서 다시 안전 점검을 거쳐 확실한 대안을 강구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에 대처하는 당국과 관계자의 행정력을 배가시키고 공백을 없애야겠다. 실용적인 매뉴얼과 시물레이션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그만큼 위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물 없이는 살 수 없으니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물의 위력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함부로 물 탄다거나 사람을 물로 보느냐고 빈정대지 마라. 물난리에 무사한 사람은 없다. 일찍이 전능하신 분께서도 노아의 방주만 놓아두고 물로 세상을 멸했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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