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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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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책] 김희준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여름날 유채밭에서 염원한 ‘시들지 않는 봄’
3년 전 26번째 생일 앞두고 사고로 세상 떠난
고 김희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자 유고시집

  • 기사입력 : 2023-07-28 0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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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비에 유독 슬픈 7월이다. 역시나 비가 내렸던 지난 24일. 통영에서는 촉망받던 젊은시인 고 김희준 시인의 3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김 시인은 2020년 빗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6번째 생일이자 첫 시집인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의 출간을 49일 앞둔 날이었다. 유고시집의 제목이 오늘날 여름의 이별들을 위로하길 바라며, 그동안 본지에 소개된 적 없는 그의 시집을 소개한다.

    2020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김희준 시인의 시집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섬세한 감정들을 글로 풀어낸 작품이다. 예를 들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화단에 혼자 먼저 핀 칸나와 눈 마주칠 때, 꽃이 느끼는 뻘쭘한 감정(웹진 ‘시인광장’ 2020년 4월호 대담 발췌) 같은 것들이겠다.


    일상어로 쓰인 시도 다수 있지만 시인은 주로 천체와 신화를 근원으로 한 SF적 요소들을 시어로 썼다. 시집에 수록된 57편의 시를 보면 ‘피그말리온’, ‘프로크루스테스’, ‘다이달로스’ 같은 신화 속 인물부터 ‘소행성09A87E’, ‘스펙트럼 행성’, ‘평행우주’ 등 천체 용어도 어색함 없이 등장한다.

    시집의 제목은 ‘친애하는 언니’에 나오는 시구에서 따왔다. ‘유채’로 시작하는 시는 2014년 여름 시인이 남해를 방문해 쓴 작품이다. 시인은 유채가 한창인 봄이 되면 남해에 가는 걸 즐겼지만, 시는 유채의 형체도 없이 빈터만 남은 여름의 유채밭에서 써졌을 것이다.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친애하는 언니 中)’

    시 속 화자는 유채의 노란색을 볼 수 없었을 여름날 유채터에서, 죽음을 느끼면서도 시들지 않는 영원을 염원했다. 이어 봄에서부터 떠나간 언니를 생각하며 서로가 연결돼 있음을 기대한다.

    이 시가 쓰여진 계기를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생각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야기를 덧붙인다. 김희준 시인의 어머니는 시인이다. 둘은 친구이자 연인이자 문우로 함께했다. 이 시는 어머니가 한동안 시를 쓰지 않자 희준 시인이 서로에게 시어를 주고 시를 써보자고 제안하면서 완성된 시다. 어머니가 ‘폭염’이란 시를 먼저 썼고, 이틀 뒤 희준 시인이 이 시를 보냈다.

    김희준 시인
    김희준 시인

    시집 1부 제목부터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일 정도로 시집에는 ‘여름’이란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은 생전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시집에 수록된 시 중 여름이 명료하게 드러난 시는 ‘안녕, 낯선 사람’이다. 이 시는 이별 후 이제는 낯선 사람이 된 이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으로, 섭섭하면서도 복잡미묘한 감정을 풀어낸다.

    ‘여긴 여름이야/거긴 어때?//여름을 잘 보내란 말은 이 여름/더이상 만나주지 않겠다는 말/기대를 기대하는 마음과 다가올 계절에게/끝내 다가가고야 마는 감정은/어디서 태어나나요//(안녕, 낯선 사람 中)’

    발문을 쓴 장옥관 시인은 “기존의 낡은 은유를 일찌감치 떨쳐버린 위태롭고 불안한 문장”이라며 “남다른 발상과 신선한 목소리, 가벼운 보행의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김희준 시인의 시를 설명한다.

    저자 김희준, 출판 문학동네, 148쪽, 가격 1만원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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