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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김경복(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3-07-19 19: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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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마철이 되면서 온통 물난리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암담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해가 바뀔수록 우리들의 삶은 나아져야 하건만 옛 모양 그대로 멈춰선 형국이다. 일본 핵오염수 방출 문제 등 역사의 정체기에 들어선 느낌이다. 헤겔은 일찍이 “세계사란 자유의식의 진보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인류의 역사는 항상 자유의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라는 글에서 역사의 진보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인류의 자산을 파괴하는 폭풍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당시 독일에 등장한 나치 집권이 바로 이러한 역사의 뒤틀림, 곧 폭풍에 해당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를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가 폭풍에 붙잡혀 미래로 끌려가면서 과거 방향으로 서서 파편으로 부서지고 있는 인간들과 그 문명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역사의 파행에 대한 비애를 느끼게 하는 글이다.

    역사는 결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과 맞물려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실로 그러하지 않았던가. 식민 지배와 동족상잔, 그 오랜 세월의 군부독재, 천민자본주의로 더욱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등 지금의 사회 체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사회적 체제가 우리가 만족할 만한 역사적 진보의 결과라고 보기도 어렵다. 언제든 다시 공포와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

    실제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형태로 변이하여 그 확산세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 우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비롯한 많은 민중들이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고통받았음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국에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상위계층의 재화는 더 불어나 양극화는 더 심각한 양상을 띠었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대다수 사람들이 점차 하층 계급으로 전락해 가는 모습으로 사회 체제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역사의 진보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가 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의 진보에서 자유의 확대는 재화의 동등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경제적 평등을 외면한 채 자유의 진보만을 말하는 것은 허구다. 현재 산출되고 있는 지구의 재화는 전 지구인이 충분히 그 생활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문제는 제도다. 지구의 재화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평히 지녀야 할 물질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재화를 소수가 독점하고, 사회는 소수가 그 재화를 독점해도 그것이 정당한 자유의 행사인 양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공유재화를 사적 소유로 만들어도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 분기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사항은 공유가치의 확장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진보세력은 공유가치를, 보수세력은 사적가치를 우선시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올 총선이나 여러 정치적 국면에서 두 세력은 은연중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 두 가치 중 하나를 대변하면서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어느 가치가 이 시점에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 모두에게 달려 있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어쩌면 우리는 또 한 번 역사의 배반에 마주할지 모른다.

    다른 측면에서도 역사의 미래는 인구 소멸과 기후위기 등으로 좀처럼 희망을 찾기 어렵게 전개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 모든 것들이 상호 관련되어 있는데, 그 실마리를 찾아 푸는 일이 너무 모호하고 난감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렇게 읊조려 볼 수밖에. 우리는 오늘날 도대체 무엇에 기대어 진정한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김경복(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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