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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폭 피해자가 전학 가는 현실

  • 기사입력 : 2023-07-13 20: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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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내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또 학교폭력이 터졌다. 지난 3월 산청의 한 고등학교에 이어 2개월 만이다. 그동안 교육당국은 실태 파악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이 학생은 지속적으로 상급생 4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기사에는 차마 담기 어려운 성적인 패드립(패륜+드립의 합성어, 본인 부모와 남의 가족을 비하하는 발언), 군대에서나 보던 얼차려도 행해졌다. 샤워장에서는 피해 학생에게 소변을 뿌렸으며, 흉기로 위협하고 옷장에 가두고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기도 한 것으로 학폭대책심의위 조사 결과 밝혀졌다.

    제보를 받고 나서 고민했다. 부모와 논의 끝에 잠깐 보류했다. 왜냐하면 이 학생은 전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도가 된다면 피해 학생에게도 2차 피해가 우려됐다. 학폭대책심의위 처분 결과는 출석정지, 학급 교체, 학생 및 보호자 특별교육, 보복행위 금지 등이 내려진 상황. 피해 학생 학부모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강력 반발했지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일단 다니던 학교에 남고자 노력했다. 이 학교는 공동체 회의라는 특별한 제도가 있다. 매주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여 중대 사안이 발생하면 논의하고 자체적으로 벌칙이나 생활 규율 등을 결정한다. 피해 학생은 공동체 회의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학폭이 대물림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자는 학생의 결심을 응원했다. 일이 잘 해결된다면 이 사실을 기사화하지 않기로 부모와 약속했다. 하지만 학교는 가해자 실명을 거론하지 말 것, 학폭심의위에서 인정된 부분만 말할 것, 사전에 발언 내용을 제출할 것 등 조건을 내세우면서 무산됐다. 피해 학생은 결국 억울한 마음도 풀지 못하고 전학을 갔다. 피해자인데도 말이다.

    이 학생의 심정을 누가 다 이해할 수 있으랴. 학폭을 당하면서 메모로 남긴 글을 공유한다. ‘나는 지금 우울증과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해졌고, 학교를 전학 가고 싶거나 자퇴가 너무 하고 싶음. 진짜 웬만하면 참고 견디거나 하는데 지금은 진짜 진짜 너무 힘듦. 그래도 내가 지금 어찌저찌 버티고 있는 이유는 주변에 친구들과 좋은 형들이 있어서 버티는 거임. 내가 도저히 진짜 진짜 못 버틸 때가 올 거 같기도 해서 학교폭력 증거로 남기기 위해 이 글을 적음.’

    이민영(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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