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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배정철(전 창원동부초 교장·작가)

  • 기사입력 : 2023-07-06 19: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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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 선생~ 하고 부르는 분이 있다. 배‘교장님’도 아니고, 배‘교장’도 아니고, 배‘선생님’도 아닌 그냥 배‘선생’이다. 국어사전에 ‘선생’은 1.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2.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3.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꼭 ‘님’자를 붙이지 않고 아무개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의미다. 그분이 사전 1의 의미로 불렀어도 맞는 말이고, 2의 의미로 불렀다면 분에 넘치는 일이고, 3의 의미로 불렀으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님’자를 안 붙여 불렀다고 서운해하는 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사전적 의미가 그렇기는 해도 우리 사회에서 ‘아무개 선생~’하고 부르는 건 어쩐지 좀 하대하는 느낌이다. 윗사람이 조금 높여 부르는 듯해도 아랫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교장이 같이 근무하는 교사를 부를 때도 그럴 수 있지만, 친밀도가 높은 사이일 경우에라야 그럴 수 있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님’자를 꼭 붙여서 OOO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건 적건 상관이 없다.

    사회생활하며 만나는 사람, 알게 된 사람은 대부분 그 직함에 따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부르기에도 무난하고 듣는 상대방도 싫어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지위가 높을 때는 더 그렇다. 회장님, 사장님, 대표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님, 실장님 등등. 상대방의 직함을 제대로 몰라 교장을 교감으로, 장학관을 장학사로, 국장을 과장으로 잘못 호칭하면 핀잔을 듣지는 않아도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잘 모를 때는 한두 단계를 높여 부르는 게 상책이다. 직함에 따른 호칭은 퇴직 후에 더 빛을 발한다. 교직의 경우, 교장으로 퇴직한 분은 은퇴 후에도 OO교장님~이라고 부르고, 교육장으로 퇴직하거나 교장으로 퇴직하더라도 교육장을 한 번 거친 분에게는 꼭 교육장님~으로 호칭한다. 그렇게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분을 본 적이 없지만 다들 그렇게 호칭하고 또 상대방도 흐뭇해하는 것 같다. 퇴직한 분들 여럿이 모인 자리, 퇴직 전 경력이 섞여 있는 경우, 살짝 난감할 때가 있다.

    묘비명이나 제사 지낼 때 지방에 직함이 들어가기도 한다. 교장을 지낸 사람은 현고교장부군신위(顯考校長府君神位)로 쓸 수 있다. 관직이 없었던 사람은 통상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로 쓴다. ‘학생’이라고 쓰는 건 아마도 늘 배우는 자세로 이승과 저승에서 살라는 선조들의 큰 뜻이 담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후손들은 ‘학생’에서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해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애를 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알고 보면 사람은 죽어 빈껍데기 직함만 남긴다.

    배정철(전 창원동부초 교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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