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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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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산멕이를 아십니까?- 서정매(한국민속음악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23-07-05 19: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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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멕이가 뭘까? 지난 4월, 길일에 해당하는 3월 삼짇날,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서 산멕이가 열렸다. 그리고 5월 말, 삼척시 미로면에서 미로면 주민들에 의해 또다시 산멕이가 열렸다. 현재 강원도 두 지역에서 전승되는 산멕이는 봄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파전, 화전을 만들며,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집안의 무사안일을 비는 민속신앙이다.

    각 가정에서는 한 해 동안 무탈하게 만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각 가정에 모시고 있던 문중 시조인 산과 군웅, 조상 등을 산에 마련된 특별한 장소로 모시고 와서 멕이는 의식을 한다. 각 가정에서 모시고 온 산은 뫼(山)가 아니라, 한지에 왼새끼줄을 두른 형태의 신체(神體)로, 이것을 ‘산’이라 부른다. 산은 각 가정에 별도로 모시며, 집에 모신 산을 매년 특정한 장소에서 멕인다. 이것이 산멕이이다. 산멕이는 주로 봄에 이루어지지만, 일부 집안은 단풍맞이 행사로 봄, 가을에 두 번을 지내기도 하고, 봄에 산멕이를 못한 사람들은 가을에 지내기도 했다.

    산멕이 하는 장소는 예전에는 1시간 정도 거리의 산 중턱이었지만, 현재에는 10여분 정도의 산 아래에서 이루어지며, 계곡물을 떠서 올리기 때문에 계곡물이 흐르는 평평한 곳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준비한 제물의 종류는 술, 떡, 포, 전. 과일, 생선, 고기, 나물, 밥(메) 등이며, 각자의 정성대로 준비한다. 야외여서 그릇은 별도로 준비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한다. 각자 준비한 제물은 돌이나 바위 위, 또는 판판한 곳에 흰 종이를 깔아 음식을 차린다. 어떤 이는 주변의 돌을 종이 아래에 깔아서 제물의 받침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작은 행위에 정성이 가득 느껴졌다.

    산멕이의 시작은 주변을 정화하기 위해 부정치기(부정굿)로 시작한다. 본 의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마치 불교에서 도량을 깨끗하게 하는 사방찬과도 유사하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 악사가 귀하던 과거에는 요즘과 달리 북 하나로 다양한 음향 효과를 만들었다. 북에 숟가락이나 엽전을 달아서 쇳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다만 부정치기 부분에서는 쇳소리가 나면 신을 부르는 행위이므로, 북에 맨 엽전이나 숟가락을 북 위로 올려서 북소리만 나게 하였고, 쇳소리가 나야 하는 부분에서는 다시 숟가락이나 엽전을 내려서 북을 쳤다. 북을 칠 때마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나 엽전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쇳소리와 북소리의 음향 효과, 이는 혼자서도 다양한 음향을 내기 위한 방법이었겠지만, 이처럼 숟가락이나 엽전 등과 같은 일상도구를 의식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산멕이가 엄숙한 의식이 아닌 민간신앙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의식을 마칠 무렵에는 길게 찢은 삼베 양쪽에 각각 돌을 달아서 높은 나뭇가지 위에 던져서 올린다. 마치 돌 던지기 놀이를 하듯이. 이것이 조상님 옷 갈아입히는 절차이다. 나무에 걸쳐진 삼베는 일 년 내내 그대로 두며, 매년 이 자리에서 같은 행위가 또다시 이루어진다. 다만 삼척 미로면에서는 삼베를 나무에 매단 후 다시 말끔히 수거하였다.

    현재 산멕이의 전통은 과거와 달리 매우 축소되고 변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삼척에서는 마을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미로면 청년회장이 어르신들 점심식사를 위해 비빔밥 재료를 지게에 지고 올라왔다. 어려서부터 봐 왔고, 결혼해서도 쭉 이어온 이 행위를 그저 그대로 이어갈 뿐이다. 생활 속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산멕이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참석을 했다. 저렇게 허리 굽은 할머니가 어떻게 이 산을 걸어올라 왔을까. 놀랍게도 이번이 마지막 산멕이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왔단다. 허리 굽은 몸으로 조상께 큰절을 올렸다. 좌중이 숙연해졌다. 한국 산멕이의 전통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서정매(한국민속음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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