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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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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추락하는 입법권의 권위- 이재달(심산서울병원 부이사장·전 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3-06-28 19: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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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도 보도 못한 ‘비례 위성정당’이란 괴물을 잉태하며 출발한 제21대 국회도 이제는 느릿느릿 지는 석양과 같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임기를 채 열 달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야 의원들의 고질병인 이전투구 놀음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없다. 국민의 눈에는 마주 오는 두 대의 차량처럼 막판으로 치닫는 여·야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고 걱정스럽게 비친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입법 절차만 봐도 그렇다.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법안 발의→상임위원회 의결→법제사법위원회 통과→본회의 통과→대통령 승인→공표라는 절차를 거친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법안들은 이러한 통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어 본회의에 직회부(直回附)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묶인 법안을 상임위에서 본회의에 바로 올려 본회의 표결로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방송법 등의 법안이 모두 민주당 주도로 그렇게 처리되었다. 상임위 단독 의결→본회의 직회부(법사위 패싱)→본회의 통과가 새로운 입법 패턴이 된 것 같다.

    직회부는 법사위에 회부된 법률안이 60일 이내에 심사가 끝나지 않았을 때 소관 상임위가 본회의에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제86조 3항을 근거로 한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개정 당시 법사위의 상왕(上王) 노릇을 제한할 취지로 도입된 조항인데 애초 법사위 계류 기간은 120일이었다. 그것을 60일로 단축한 것은 2021년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법사위 위원장직을 내주면서 법사위를 약화하기 위해 요건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이 요건이 충족되면 소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 직회부가 가능하다.

    21대 총선에서 180석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직회부 조항을 무기로 야당이 되어서도 입법 독주를 하고 있다. 직회부 법안에 대해 정부와 소수 여당이 대항할 수단은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밖에 없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 보듯이 대통령이 직회부 법안들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이처럼 결과가 뻔한 ‘야당 강행-대통령 거부권’의 벼랑 끝 싸움에서 남는 것은 여야 대치에 따른 정치 실종과 정치 불신이다. 민주당 출신의 김진표 국회의장조차 반복되는 직회부 법안이 궁극적으로 국회 입법권의 권위를 실추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거대 의석을 무기로 강성 지지층을 바라보며 정치하는 민주당이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 협조를 위해 손을 내밀 의지가 없는 여당을 보면 입법 대치 국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입법 대치 상황을 보노라면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밤중에 낭떠러지로 동시에 차를 몰고 가다 차에서 먼저 탈출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 장면이다. 여기서 치킨 게임(chicken game)이 유래했는데, 이 무모하고 위험한 경쟁에서 승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공멸하거나 겁쟁이로 낙인찍힐 뿐이다.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치킨 게임에서도 국민 앞에 자랑스럽게 성적표를 내밀 쪽은 없어 보인다. 거대 야당은 다수의 횡포라는 비난을, 여당은 정치력 부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선거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의 제22대 총선일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국민은 여당이 잘했는지, 야당이 잘했는지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다. 딱히 잘한 쪽을 가리기 어렵다면 누가 덜 못했는지 살펴서라도 그쪽에 표를 줄 것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고 싶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강성으로 치닫고 싶은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또한 직회부로 실추된 입법권의 권위를 회복하고 의회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재달(심산서울병원 부이사장·전 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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