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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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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사람의 마을에는 언제 꽃이 필까-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3-06-07 19: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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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 시대의 암울하고 팍팍했던 시절에도 꽃은 어김없이 피었다. 얼어붙은 땅을 헤집느라 솜털 같은 이마가 발갛게 벗어져도 새싹은 기어코 대지로 올라왔다. 온 산천이 연초록 잉크로 손편지를 쓰고 필기체의 바람이 불면서 삼라만상은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로 요란했다. 꽃은 언제 봐도 향기롭고 아름답다. 가까이 가고 싶고 코를 벌렁거리며 향기를 맡고 싶고 만져도 보고 싶다. 소중한 사람에게 고백을 담아 부정맥 심장과 함께 선물로 보내고 싶다. 그러나 그런 꽃들도 마음껏 예쁘게 봐주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눈치 없이 너무 화려하게 핀 꽃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듯 서둘러 꽃잎을 떨구었다. 사람들이 창문을 닫고 격리되고 고립되고 죽어 나갈 때였다. 마음 놓고 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문상객도 없는 장례식장 국화뿐이었다. 그렇게 도둑맞은 3년의 세월이 모질게 흘러갔다. 이제 사람들은 봉한 입을 풀고 닫았던 가슴을 열었다. 안부가 궁금했던 사람들이 만나 해방된 입으로 밥을 먹고 술잔을 건네며 잇몸을 드러내고 파안대소했다. 넣어두고 아껴둔 말들을 서둘러 꺼내다 보니 말이 말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아프기는커녕 마냥 즐거웠다. 잘 견뎠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모나리자 미소 같은 얼굴에 햇살이 내려앉고 입꼬리가 절로 귀에 걸렸다. 해방된 민족의 해맑은 모습을 보는 일은 흐뭇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꽃을 찾고 강으로 바다로 떠나는 발걸음은 잠시 가벼웠고 풀어놓은 마음은 경직되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은 절박할 때만 굳히고 보는 비상용품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동안 눌러왔던 것들이 일어서고 누적된 것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예상은 된 일이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편을 갈라 으르렁거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행하고 싶은 것만 행하니 배려와 이해와 소통의 강은 마르고 불신과 분열과 혼란의 강물만이 넘쳐 출렁였다. 좌골신경통이든 우골편두통이든 증세가 도지면 치료가 우선인데 나라를 두 동강 낼 듯 열만 올리니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합병증까지 따라붙을 기세다.

    정치권은 여전히 진영논리에 밥그릇이나 챙기고 틈만 보이면 어떤 프레임이라도 씌워 매도할 대상 물색에 혈안이 되어 있다. 똥 묻은 걸레가 있어도 서로 치우라고 거품을 무는데 국민들 보기엔 거품 문 그 입에서 나는 악취도 역겹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혀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 때는 여명의 빛이라도 간절했건만 막상 터널을 빠져나온 듯하니 그 일들은 과거로 묻어버렸는지 딴 얼굴이니 간사하고 염치없고 민망스럽다. 다양한 목소리는 분쟁이 아니라 지혜롭게 강을 건너기 위해 돌다리 두들겨보는 소리일 때 나라는 건강하다. 그 다리 건너 닿을 정의와 법치와 정체성이 살아있는 나라야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염원하며 길이 후세에 물려줄 영광스러운 유산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이다. 사람의 마을에 피는 꽃은 향기가 짙어 나비가 찾고 새들이 날아와 그 꽃씨를 사방으로 옮겨 날라서 온 세상에 꽃 천지가 될 것이다. 꽃을 피우는 사람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가수 안치환이 목 터지게 부르는 노래에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라. 서로 헐뜯고 싸우지 말고 좌든 우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고 못한 것은 부족하니 더 잘하자고 대안을 제시해 함께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사과하면 용서하고 벌 받을 일 있으면 벌 받으면 소통은 확산되고 화합의 길은 열린다. 지구온난화로 급속도로 다가오는 환경위기는 또 언제 우리를 어떤 질병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을지 모른다. 지지고 볶을 시간에 제발 정신 좀 차려서 냄새나는 것들 갖다 버리고 흐트러진 것들 바르게 정리하고 닦고 쓸고 다듬어 사람 사는 마을 만들어 꽃 좀 피워보자. 그 꽃밭에 물 주며 살다 죽고 싶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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