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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신성의 회복과 시적 구원- 김경복(경남대 국어교육과교수)

  • 기사입력 : 2023-05-24 19: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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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성(神聖)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신성의 상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을 잃게 만든다. 곧 자연을 비롯한 이 세계의 모든 사물과 생명들을 자본의 논리와 수단으로 잠식시켜 버린다.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잃어버리고 자본의 이윤 획득의 도구적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사물들은 전혀 존중될 가치의 대상이 아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부정적 근대문명의 여파라 할 수 있는 심각한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맞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끔찍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 또한 생태계 파괴 현상에 의해 발생했다고 본다면 이 암울한 사회적 고통과 정신적 공황은 저 신성의 상실이라는 데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신성의 회복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은 곧 두려움으로 이어져 대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고쳐준다. 곧 경이감(驚異感)이 경외심(敬畏心)으로 이어져 사물의 본질적 가치와 고유성에 대한 공경과 겸허의 마음을 빚어낸다. 그것은 대상을 도구화하거나 타자화하는 동일자적 시선이나 중심주의 가치를 제한하고 경계한다.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함부로 대상을 제 욕망의 수단으로 격하해 써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신성을 다시 일깨우는 삶이 필요하다. 신성을 자신의 본질적 토대이자 요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 종교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가 다시 사회에 전면화되길 강렬히 바란다. 현실적 삶의 위안과 영혼의 도피처로서 종교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존재성을 인식하게 하고 영원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를 근원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종교 말이다. 이러한 종교는 다분히 범신론적 관점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만물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구를 비롯한 이 우주가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종교의 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 문학, 그 중에서도 서정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정시의 본질이 ‘혼의 형식’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혼을 부르고, 혼에 공명하며, 혼을 노래한다. 이를 시인의 행위로 고쳐 말한다면 혼을 부르는 것으로서 초혼(招魂), 불러낸 혼에 동화하는 것으로서 접신(接神), 접신한 상태에서 혼의 신성을 노래하는 것으로서 방언(方言)이 바로 시의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방언’은 접신한 사람이 무아지경에서 신의 말씀이나 은총을 중얼거리는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이미 시적 발화는 종교적 발언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 행위와 형식은 원천적으로 종교적 특성을 갖는다. 발생학적 차원에서 살펴보더라도 시는 원시시대 이래 한 부족의 안위와 풍요를 신에게 간구하는 제사장의 제천의례에서 나왔음이 고고인류학에서 밝혀지고 있다. 즉 시의 본질은 신에게 인간의 결핍과 부족을 채워줄 것을 간구하고, 그 간구가 들어줬다고 여길 때에 드리는 감사의 형식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는 구원을 바라는 호소다. 이는 종교적 특성에서 나오는 주술의 형상이다. 자기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근원에 내재해 있는 고통이나 결핍을 치유하고 채워줄 것을 신, 다시 말해 혼에게 비는 주술의 형식인 것이다. 그렇기에 시는 혼에 민감하고, 혼의 작용에 더없이 섬세하게 부응하며, 혼의 역사(役使)에 기꺼워한다. 시인이라면 어느 정도 이와 같은 혼의 울림에 자신의 존재성이 동조화되는 것을 발견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많은 생물종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그들의 아픔과 절망을 대신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시인밖에 없다.

    그렇게 볼 때 나는 우리 사회가 신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시적 가치를 중시하는 데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정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추구한다는 정신에 비추어 갈등과 분열, 대립과 차별의 현대세계의 병폐나 모순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현실에서 시적 정신이야말로 구원이다.

    김경복(경남대 국어교육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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