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경남시론] 잠재적 재난 피해자- 하경준(경남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23-03-07 19:27:01
  •   

  • ‘잠재적 경쟁자’, ‘잠재적 범죄자’ 등 특정 대상 앞에 ‘잠재적’을 붙여 향후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곤 한다. 몇 년 전,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그 어떤 설득보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을 단번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재난 또한 그러하다. 이태원 압사 참사를 경험한 피해자도, 세월호에 탑승했던 피해자도, 본인이 재난 피해의 당사자가 될 것이라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그저 재난 피해는 나와는 거리가 먼, 누군가의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최소 5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세계적 재난 사례’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많을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08년 쓰촨성 대지진, 2004년 인도네시아 대지진,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이 대표적이다. 지진 외에도 코로나19, 뉴욕 911 테러,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 세계사에 기록된 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재난 예측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가령 태풍이 발생하기 약 일주일 전부터 태풍의 이동경로 및 규모 등을 예보한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 기술로는 재난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더 많다. 특히 인간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사회재난’은 예측이 더 어렵다. 사회는 앞으로 더 복잡해짐에 따라 재난 발생의 규모와 빈도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선진국에서는 재난 대비의 핵심 전략으로 ‘레질리언스(Resilience)’를 꼽는다. ‘회복력’, ‘회복탄력성’ 등으로 번역되는데, 1973년 캐나다의 생태학자 홀링(Holling, C. S.)이 생태계 회복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재난에서도 레질리언스 개념을 사용 중인데, 도시의 재난 발생 이후 회복되는 능력을 일컫는다. 레질리언스가 강화되면, 재난 발생 시 충격이 최소화되고 재난 발생 이후 원상태로 빨리 회복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재난 대비 전략으로 레질리언스 강화 전략을 도입하였다. 레질리언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 도시가 가지는 기초체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 등으로 기초체력을 갖춘 사람은 질병으로부터 강한 것과 같이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 전반을 꾸준히 개선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재난으로부터 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레질리언스가 강한 도시, 즉 재난으로부터 강한 도시의 핵심은 구성원의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도시의 재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재난 발생 시 시민의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재난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재난을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나 스스로’이다. 따라서 항상 우리 스스로가 재난을 당할 수 있는 ‘잠재적 재난 피해자’로 인식하는 것이 재난 대응의 기본이자 준비 자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일본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우리는 다시 재난을 경험할 것이다’라는 인식 변화다. 이러한 인식은 사회의 기준을 변화시키고 그 사회의 기초체력을 향상시키는 원천이 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재난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생각하게 된다.

    하경준(경남연구원 연구위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