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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당신이 작성한 것은 사람의 것입니까?-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 기사입력 : 2023-02-26 19: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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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리포트는 사람의 것입니까?’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포스터의 제목이다. 잠시 시대 변화와 그 인식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의 리포트는 학생이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작성해 교수에게 제출하는 숙제다. 그걸 ‘사람의 것’이냐고 묻는 것은 동물이나 신의 도움을 받았느냐는 지적은 물론 아니다. 기계 즉 인공지능 챗GPT를 이용하지 말라는 권유와 경고이다. 포스터는 ‘윤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계에 풀어놓은 사나운 짐승이다’라는 카뮈의 말도 인용하여, 심각한 윤리 문제로 보고 있다. AI를 베낀 것이 사람의 것을 베낀 것보다 오히려 윤리적으로 더 비난받을 짓이라는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챗GPT는 일론 머스크가 공동 창업하였던 오픈AI사가 제공하는 대화형, 학습형,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단순한 지식 검색을 넘어서, 완성도 높은 콘텐츠, 즉 리포트, 분석보고서, 코딩, 소설, 시 등을 생성해준다. 미국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하였고, 이를 이용하여 철학적인 에세이집 책이나 삶의 목적 등에 관한 책을 며칠 만에 뚝딱 출판을 하거나, 수많은 블로그의 글을 순식간에 쓰기도 한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의 10주년 특별판 서문을 챗GPT에 맡겼다가,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그를 충격에 빠지게 한 대필 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상상 속의 질서와 지배적 구조를 창조해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챗GPT의 인기는 지금 블랙홀에 비견될 만큼 폭발적이다. 서비스 개시 후 단 5일 만에 사용자가 100만 명을 넘겼다. 넷플릭스가 3.5년, 트위터가 2년, 페이스북이 10개월 걸렸던 것과 극명히 비교된다. 이미 수억 명이 접속하였고 하루에 10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 SNS나 모임 등 어디서나 그 사용 경험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질문도 해봤더니’로 시작하여, 기가 막힌 답변으로 받은 충격, 엉뚱하거나 잘못된 답변을 얻어내는 장난, 기발한 활용 등의 무용담이다.

    진정한 게임체인저가 온 것이다. 한동안 이래저래 체험을 해 보니 짜릿한 흥미감도 솟지만 위기감도 엄습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머지않아 모든 생활에서 이런 AI로 호흡하고 먹고 마시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삽질의 시대에 나타난 굴삭기와 같다. 삽질로 살던 세상에 굴삭기가 홀연히 나타나 온 땅을 파 헤집고 다니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그때에도 삽질을 고집하며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즐기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식은 AI가 금세 찾아주는 것이니 굳이 머리에 무겁게 담고 다닐 필요가 없다. 오직 필요한 것은 최적의 바른 답을 효율적으로 유도해 낼 수 있는 질문 능력이다.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굴삭기를 두고도 운전을 할 줄 몰라 삽을 들어야 하는 것과 같다.

    대학 등에서는 챗GPT의 등장에 머리가 아플 것이다. 전통적 교육관에서는,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여 두고 그것을 분석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그 지적활동의 대부분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면 AI는 교육의 방해꾼인가. 그럴 순 없다. 언제까지나 모든 지식을 사람의 머리에 쑤셔 담아 두고 그걸 짜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교육관은 시대착오이다.

    이제 지식활동의 많은 부분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AI에게 어떻게 질문하여 유용한 답을 구할 것인지를 탐구하고 익혀야 할 때다. 머잖아 ‘당신이 작성한 것은 사람의 것입니까?’라는 말은 굴삭기를 곁에 두고 삽질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하는 말로 쓰이게 될지도 모른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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