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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변화의 시간이 오고 있다- 김유순(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장)

  • 기사입력 : 2022-11-08 19: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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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인근에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다. 당시는 인신매매 사건 보도가 연일 매스컴에서 나오던 터라 도로에 다니는 봉고차를 보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던 때다. 그래서 집결지 근처에 가면 금세라도 뒷덜미를 낚아 채이지 않을까 불안해서 역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두고서 빙 둘러 가곤 했다.

    칸칸이 유리방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오던 이곳은 지역주민과 행정, 단체의 노력으로 완전히 다르게 변화했다. 예술인이 작업공간을 마련하여 예술작품을 걸어놓기도 하고, 자그마한 서점, 작은 공원, 미술관, 카페, 전시관 등으로 변모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골목, 공간으로 바뀌었다.

    창원 마산합포구 서성동에도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117년간 존재했던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작년 12월 이 골목을 밝히던 붉은빛이 사라지고, 새로운 변화의 시간을 맞고 있다.

    몇 년 전 이 골목을 처음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라는 문구 때문인지 대낮에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자꾸 걸음이 쭈뼛거려졌다.

    이제 이 골목을 들어서는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업소 관계자들의 점유물에서 비로소 시민의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버젓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눈에서 벗어난 곳.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고, 알면서도 모른 체했던 그곳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창원시에서 매입한 400평 규모의 업소는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곳에 사람이 모이고, 놀이가 이루어지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바자회가 열리고 있다. 활기가 새롭게 생기고 있는 것이다.

    집결지 해체의 소식에 설마 하는 의구심에서 희망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들을 기억하고 기록할 공간은 아직까지 마련돼 있지 않다.

    우리들이 꿈꾸는 희망찬 미래는 이곳에서 착취당했던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 인권유린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빠뜨려서 완성될 수 없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하지 않고서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김유순(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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