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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좋은 관계

  • 기사입력 : 2016-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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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근 신부 (의령성당 주임)


    어쩌다 아가씨는 두 남자와 선을 보게 됐습니다. 모두 조건이 좋은 남자입니다. 누구를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첫 남자와 데이트했습니다. 뒷산을 돌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얼마쯤 갔을까? 남자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습니다. 잠깐, 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나, 어디에요? 아가씨는 놀라 소리쳤습니다. 저기 나무 밑을 보세요. 아. 그런데 죽은 것 같군요. 놀라실 것 없습니다. 여자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더 이상 남자의 말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가씨는 미련을 접습니다.

    다음 날 두 번째 남자를 만나 산책 갑니다. 같은 길을 걷습니다. 이제는 아가씨가 일부러 나무 옆을 지나가자고 합니다. 그때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냥 똑바로 가시지요. 왜요, 뭐가 있는가요? 여자는 퉁명스럽게 묻습니다.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저쪽을 보시죠. 숲이 참 울창하네요.

    돌아오는 길에 아가씨는 남자에게 묻습니다. 나무 밑에 죽은 뱀이 있었는데 왜 못 보게 했냐고. 남자가 답합니다. 안 좋은 건 한 사람만 보는 것으로 족하죠. 여자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마음으로 그를 선택한 겁니다. 훗날 이유를 묻는 부모에게 아가씨는 답했습니다. 안 좋은 걸 함께 보자는 사람보다 좋은 걸 같이 보자는 사람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몰라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듣고 있습니다. 신문과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선 앞다퉈 새 소식을 전합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소식들입니다. 어떤 것은 무익한 정보이기도 합니다. 한 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좋은 소식을 많이 접하고 사는지요? 나쁜 소식을 더 많이 들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어두운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면 모르는 새 미래는 어둠으로 다가옵니다. 자신도 그런 정보를 전하면서 살게 됩니다. 알고 있는 대부분이 나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 전하고 좋은 말을 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연습 없이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매일 한 번이라도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일부러라도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도 분명 노력의 결실입니다.

    사람에겐 운명적으로 함께 가야 할 동반자가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그만큼 삶은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관계를 원합니다. 하지만 원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실천의 첫걸음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좋은 정보와 좋은 말을 전하다 보면 자동적으로 좋은 관계가 됩니다. 불평과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칭찬과 격려는 아무나 못합니다. 좋은 시각을 갖지 않으면 힘든 일입니다. 옛말에 못이 깊으면 고기가 넘쳐나고 골짜기가 깊으면 짐승이 모인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도 깊이가 있습니다.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 곁에는 이웃이 떠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른바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경쟁력이 높다는 말이 아닙니다. 작아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 사이도 자신을 낮추면 누구나 가까이 옵니다. 그런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쉽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합니다. 밝고 따뜻한 시각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맞선을 봤던 아가씨는 지혜로웠습니다. 신은근 신부 (의령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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