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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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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네 맘 다 들켰어! - 한경화 (양산희망학교 교사)

  • 기사입력 : 2016-04-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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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사춘기앓이가 심하기로 유명한 중2학년을 맡은 적이 있다. 외소증인 지훈(가명)이는 새까맣고 까칠한 얼굴과는 달리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는 학생이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돌연 “선생님 몇 살이세요? 결혼 안하셨죠?” 난 갑자기 웃음이 났고 ‘요 녀석 중2가 되니 이성에 눈을 뜨는가 보네’ 생각하며 나이와 가족관계를 말해줬다. 그리고 지훈이의 얼굴을 봤을 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 이후 지훈이는 얼굴을 꼿꼿이 들고 수업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또 말끝마다 “아줌마샘!”하며 놀리기도 했다.

    그 이후 난 학생들이 결혼했냐고 물으면 “결혼한 것처럼 보여? 네가 보이는 대로 믿어”라고 말하곤 한다. 이 웃지 못할 트라우마를 만들어 준 지훈이에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그 당시 우리 반에 아주 독특한 남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재민이(가명)는 수업을 방해하며 학생들을 차례대로 괴롭히는 행동을 자주 하곤 했다. 그날은 지훈이가 제대로 열이 난 모양이었다. 육두문자는 기본이고 의자를 바닥에 던지고 급기야 재민이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온몸으로 막아 봤지만 쉽지 않았다.“지훈아 너 왜 그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훈이는 큰 소리로 울면서 “선생님, 저도 저를 제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 한마디에 내 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난 아무 말하지 않고 지훈이를 꼭 안아줬다. 맘이 가라앉을 때까지… 지훈이는 외소증으로 일반학교에서 많은 놀림을 당해왔고 어릴 적 어머니도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새어머니가 몇 번씩 바뀌곤 했는데 정이 들 때쯤이면 또다시 떠나곤 했단다. 특수학교로 전학 오기로 결심하면서 아버지가 학교 인근 복지시설로 입소시켰다.

    외로움이 큰 아이,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 지훈이는 마음속 깊이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키워온 것 같다. 지훈이에게 화가 날 때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그렇게 조금씩 좋아질 무렵 경남에서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열렸고, 지훈이가 축구선수로 뽑혀 경남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지훈이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지훈아, 선생님이 응원 갈게. 잘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줌마샘은 됐어요.” 서운한 맘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몰래 미소 짓는 지훈이를 볼 수 있었다. ‘그래, 네 맘 벌써 들켰어! 지훈아 꼭 멋진 축구선수가 돼! 힘들어도 이겨내고 화가 나면 크게 소리치고 알겠지? 내가 널 잊지 않을게!’ 지훈이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고 그 계기로 경북명문 축구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됐다.

    축구선수가 꿈인 지훈이는 경북으로 전학을 갔고 그렇게 우린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세월이 흘러도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지훈이를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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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화 (양산희망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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