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일 줄 알았던 ‘징그럽게 밥 안 먹는 아이’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누구네 아기가 밥을 안 먹어서 인스턴트만 먹인다며, 하물며 엘리베이터에서 밥을 먹이는 엄마도 있다며, 웃으며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엄마들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을 거라고 내심 비난하듯, 식습관이든 뭐든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모두 부모 탓 아니겠느냐’며.
그런데 막상 내 자식 일이 되니깐, 육아관 식습관 교육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목표는 오로지 딸이 먹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가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한계였다.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딸은 뭔가 먹일 준비만 하면 ‘아냐, 아냐’ 손을 흔들며 도망 다녔고, TV와 책, 장난감을 총동원해 어찌어찌 겨우 입에 뭔가를 넣어도 몇 번 씹다가 다시 뱉어버렸다. 이유식을 처음 먹일 때도 이렇게 애를 태우진 않았는데, 달래도 보고 화도 내고 장난도 쳐 봤지만 통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억지로 먹이면 악을 쓰고 울었다.
으악. 못났다. 먹기 싫다며 우는 딸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그나마 과일이나 과자류는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밥 거부는 계속됐다. 춘향이가 정절을 이렇게 지켰을까 싶을 정도로 딸은 밥 알을 단 한 숟가락도 목으로 넘겨주지 않았다. 그렇게 주전부리로 딸은 일주일을 버텼다.(영양보충은 분유로)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신가. 다행히도 딸은 지금 밥을 잘 먹는다. 해결사는 시어머니였다. 밥에다 설탕을 뿌려서 먹이신 것이다.
19개월 동안 조미료 없는 밥과 반찬만 먹던 아이에게 달달한 ‘설탕’은 밥 거부를 포기할 만큼 맛이 좋았을 것이다. 설탕밥이면 어떠랴, 설탕보단 밥이 많지 않은가. 쪼그만 입에 밥알이 들어가고 목으로 꿀꺽 넘어가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기뻤다.
과일로 장난만 치는 딸, 좋으냐?/
어쨌든 그 한 끼를 싹 비운 딸은 다시 먹보로 돌아왔다. 다만 까탈스러운 먹보가 됐다. 맛이 없거나 밍밍한 음식은 혀 끝에 닿자마자 바로 뱉어낸다.(아, 이 습관 어떻게 고치나요? 육아 고수님들 알려주세요.ㅠㅠ)
그렇다고 계속 설탕밥을 주진 않는다.
까다로워진 입맛을 맞추기 위해 전문 쉐프 같은 마음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음식을 만든다. 누가 그랬던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라고.
침실에서까지? 아빠의 밥 먹이기 유혹
덧붙여 내 새끼 밥 안 먹겠다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징그러운 소리다.
서른넷이나 먹어서야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나는, 요즘 끼니마다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부모님표 반찬을 죄다 꺼내 뱃속으로 소환 중이다.(서른넷 딸자식(며느리) 살찌는 소리가 더 징그러우시려나...)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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